이상윤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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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 시절 == | == 국가대표 시절 == | ||
− | 1990년 2월 15일, [[노르웨이]]와의 친선 A매치에서 데뷔전을 치렀으며 여기서 A매치 데뷔골을 뽑아낸다. 이후 [[제1회 다이너스티컵]]에도 출전, [[한중전]]에서 결승골을 뽑아내며 맹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1990년 FIFA 이탈리아 월드컵]]의 본선 엔트리에까지 들었으나 본선 출전에는 실패. 1992년 [[제2회 다이너스티컵]]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했던 이상윤은, 1997년 [[차범근]]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5년 만에 국가대표에 복귀하게 된다. [[1998년 FIFA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전 경기(8경기)에 출전, 3골<ref>[[최용수]]의 선취골로 앞서나갔으나 샤츠키흐의 동점골로 다잡은 경기를 놓칠뻔 했던 [[우즈베키스탄]]과의 아시아예선 2차전에서 경기 종료를 얼마 안 남겨두고 결승골을 넣으면서 2연승을 기록, 대한민국을 상승세로 이끈바 있다.</ref>을 득점하며 맹활약 한다. 이후 [[킹스컵]]과 [[다이너스티컵]] 그리고 각종 평가전에서 득점을 하며 맹활약 하지만, 정작 [[1998년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는 극도의 부진한 경기력으로 질타를 받는다. 결국 [[네덜란드]]와의 본선 2차전을 마지막으로 이상윤은 국가대표 무대를 내려온다.<ref>2006년 [[베스트 일레븐]]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멕시코]] 전을 앞두고 훈련 도중 머리에 공을 맞고 쓰려져 잠시 기절했고, 이후 깨어났지만 정상 컨디션이 아닌 상태로 경기에 나선게 | + | 1990년 2월 15일, [[노르웨이]]와의 친선 A매치에서 데뷔전을 치렀으며 여기서 A매치 데뷔골을 뽑아낸다. 이후 [[제1회 다이너스티컵]]에도 출전, [[한중전]]에서 결승골을 뽑아내며 맹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1990년 FIFA 이탈리아 월드컵]]의 본선 엔트리에까지 들었으나 본선 출전에는 실패. 1992년 [[제2회 다이너스티컵]]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했던 이상윤은, 1997년 [[차범근]]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5년 만에 국가대표에 복귀하게 된다. [[1998년 FIFA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전 경기(8경기)에 출전, 3골<ref>[[최용수]]의 선취골로 앞서나갔으나 샤츠키흐의 동점골로 다잡은 경기를 놓칠뻔 했던 [[우즈베키스탄]]과의 아시아예선 2차전에서 경기 종료를 얼마 안 남겨두고 결승골을 넣으면서 2연승을 기록, 대한민국을 상승세로 이끈바 있다.</ref>을 득점하며 맹활약 한다. 이후 [[킹스컵]]과 [[다이너스티컵]] 그리고 각종 평가전에서 득점을 하며 맹활약 하지만, 정작 [[1998년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는 극도의 부진한 경기력으로 질타를 받는다. 결국 [[네덜란드]]와의 본선 2차전을 마지막으로 이상윤은 국가대표 무대를 내려온다.<ref>2006년 [[베스트 일레븐]]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멕시코]] 전을 앞두고 훈련 도중 머리에 공을 맞고 쓰려져 잠시 기절했고, 이후 깨어났지만 정상 컨디션이 아닌 상태로 경기에 나선게 네덜란드 경기에서 부진한 원인이었음을 밝힌바가 있다. 당시 [[신문선]] MBC 해설위원은 네덜란드전에서 교체 카드를 모두 소진해버릴때까지 이상윤 선수를 빼지않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했을 정도...</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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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 스타일 == | == 플레이 스타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