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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퍼리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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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리그의 춤범은 2월 23일 이었고 리그의 시작은 5월 8일이었기 때문에 수퍼리그 시작전 3월에 열린 대통령배에는 출전하였으나 4강에서 [[국민은행 축구단]]에 패하였다. 수퍼리그에서는 4위를 기록했으나 수퍼리그의 흥행결과에 고무되어 더 나은 성적을 위해 프로화를 결정하였다. 이로써 포항제철 축구단과 포항 스틸러스의 역사는 갈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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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리그의 춤범은 2월 23일 이었고 리그의 시작은 5월 8일이었기 때문에 수퍼리그 시작전 3월에 열린 대통령배에는 출전하였으나 4강에서 [[국민은행 축구단]]에 패하였다. 수퍼리그에서는 4위를 기록했으나 수퍼리그의 흥행결과에 고무되어 더 나은 성적을 위해 프로화를 결정하였다. 기존의 포항제철 축구단은 프로화 시키고  별도의 아마추어 축구단을 새롭게 창단한다.
 
  
 
== 아마추어 2군시절 ==
 
== 아마추어 2군시절 ==

2014년 8월 11일 (월) 10:45 판

이 문서는 포항제철이 운영한 축구단이자 포항 스틸러스의 실업시절에 관한 것입니다. 포항제철이 최대주주인 프로축구단에 대해서는 포항 스틸러스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포항제철 축구단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포항제철이 최대주주인 프로축구단에 대해서는 포항 스틸러스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포항제철 축구단
포항제철.jpg
기본정보
정식명칭 포항제철 축구단
원어명 한자: 浦項製鐵蹴球團
별명 포철
클럽색          
빨강, 검정
창단년도 1973년
해체년도 1992년
홈경기장 포항종합운동장
운영
소유주 포항제철
구단주 박태준
감독 한홍기
홈페이지 http://www.steelers.co.kr
현재시즌

포항제철 축구단(浦項製鐵蹴球團)포스코(구 포항제철주식회사)가 1973년 창단한 실업축구단이다. 약칭은 포철. 1983년 수퍼리그 참가후 프로 전환 당시 아마추어팀도 함께 운영하기로 하면서 1992년까지 실업팀으로 활동하다가 포항제철 아톰스에 통합되어 사라졌다. 포항 스틸러스의 전신이자 아마추어 2군이기도 했던 팀.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포항 스틸러스#역사#실업시절입니다.

창단 및 초기

대한중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포항제철 축구단의 역사는 대한중석 시절까지 거슬로 올라간다. 박태준대한중석공사 사장 시절 공들여 운영하던 대한중석 축구단이 박태준이 자회사인 포항제철로 옮겨간 1967년 이후 양지축구단의 창단으로 인한 인력 차출 등으로 여러가지 부침을 겪던 중 1972년 경영상의 이유로 축구단을 해체하자 이듬해 대한중석 축구단의 잔류 멤버와 스탭진, 양지 축구단이 해산되면서 예편한 이회택 등을 영입해 1973년 5월 3일 창단한 축구단이다. 창단기념으로 포항제철과 교류하고 있던 신일본제철의 축구부[1]와 친선경기를 시작으로 그해 전국축구선수권대회부터 참가를 시작했다. 그러나 신규 창단이 아니라 기존 선수의 영입으로 이루어진 창단으로 인해 선수들의 노쇠화와 일부 선수의 돌출행동[2] 인해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1974년 봄 창단 1년만에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 첫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1975년에는 춘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1977년에는 전국축구선수권대회와 전국실업축구연맹전 모두 준우승을 차지해 콩 더블을 달성했다.


전성기

포항제철 축구단의 전성기는 1980년대 초였는데 당시 대학팀을 비롯한 모든 아마추어팀이 출전하여 권위있던 전국축구선수권대회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가 아니라 실업팀만이 참여하는 전국실업축구연맹전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당시 실업축구를 1,2부로 나눠 승강제를 실시하려 했기 때문에 모두 실업축구연맹전에 집중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오히려 실업축구연맹전이 더 치열하게 전개된 상황이었다. 1981년 추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과 1982년 통합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을 한 결과 80~82년 3년간의 통합 점수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4위까지 주어지던 수퍼리그 출전권을 얻어 실업팀으로 참여하게 되었다.[3]


수퍼리그

이 부분의 본문은 포항 스틸러스 1983입니다.

수퍼리그의 춤범은 2월 23일 이었고 리그의 시작은 5월 8일이었기 때문에 수퍼리그 시작전 3월에 열린 대통령배에는 출전하였으나 4강에서 국민은행 축구단에 패하였다. 수퍼리그에서는 4위를 기록했으나 수퍼리그의 흥행결과에 고무되어 더 나은 성적을 위해 프로화를 결정하였다. 기존의 포항제철 축구단은 프로화 시키고 별도의 아마추어 축구단을 새롭게 창단한다.

아마추어 2군시절

이 부분은 포항제철 축구단(1984 아마)에 수록되었습니다.

역사

성적

  • 실업 시절


  • 2군 시절


에피소드

  • 황선홍, 홍명보가 K리그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입단한 곳이 바로 아마추어 실업팀인 포항제철 축구단이다. 황선홍은 3년간 리그 참여금지로 인해 독일 유학을 떠났으며, 홍명보는 구단간에 극적인 합의로 다시 드래프트에 참여하였다가 유공 코끼리의 3명의 선수와 3대1 트레이드로 포항에 입단하게 되었다. [4]


같이 보기


참고 사항

  1. 1970년 합병된 야와타제철의 축구부로 가시마 앤틀러스와는 상관이 없다. 가시마 앤틀러스는 2012년 신일본제철에 합병된 스미토모금속의 축구부가 전신이다.
  2. 이회택 선수가 나이트클럽에서 싸움에 휘말려 폭력행위로 인해 구속되었다.
  3. 2위 웅비(불참), 3위 국민은행, 4위 대우. 원래 80~82년도 통합점수는 83년도 실업축구 1,2부제를 위한 산정점수였으나 수퍼리그가 출범하면서 수퍼리그 참여기준이 되었다.
  4. K리그 드래프트 1992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