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국"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풋케위키, 대한민국 대표 축구위키 FootballK WIKI-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잔글
잔글
4번째 줄: 4번째 줄:
  
 
[[File:최성국.jpg|200픽셀|섬네일|오른쪽|성남시절 최성국과 김동현 보니까 브로커들이네]]
 
[[File:최성국.jpg|200픽셀|섬네일|오른쪽|성남시절 최성국과 김동현 보니까 브로커들이네]]
 +
 +
 +
 +
  
 
== 유소년 시절 ==  
 
== 유소년 시절 ==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동곡초등학교, 역곡중학교, 정명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를 중퇴하였다. 167cm로 단신이었던 최성국은 민첩하고, 개인기가 좋아 환상적인 드리블로 상대 수비 2, 3명을 쉽게 따돌리는 점이 디에고 마라도나와 닮았다는 점에 착안하여 '리틀 마라도나'라는 별명이 붙었다. 최성국은 뛰어난 활약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정조국과 함께 대표팀의 훈련생으로 뽑혔고,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도 우승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다.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동곡초등학교, 역곡중학교, 정명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를 중퇴하였다. 167cm로 단신이었던 최성국은 민첩하고, 개인기가 좋아 환상적인 드리블로 상대 수비 2, 3명을 쉽게 따돌리는 점이 디에고 마라도나와 닮았다는 점에 착안하여 '리틀 마라도나'라는 별명이 붙었다. 최성국은 뛰어난 활약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정조국과 함께 대표팀의 훈련생으로 뽑혔고,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도 우승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다.
 +
 +
 +
 +
  
 
== 울산 시절 ==  
 
== 울산 시절 ==  
  
 
청소년 대표로 승승장구하던 최성국은 2003년 [[울산 현대]]의 지명을 받고 울산에 입단. 첫 시즌 27경기에 나와 7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올랐고, 팀도 승승장구하며 [[성남 일화]]와 우승경쟁을 벌였지만 당시 최강전력을 자랑하던 성남에 밀려 결국 준우승에 머물렀고, 신인왕 타이틀도 [[안양 LG]]의 [[정조국]]에게 밀리며, 신인왕 자리도 놓쳤다. 하지만, 2004년 최성국은 [[2004 아테네 올림픽]] 예선과 본선에 잇달아 출전하면서, 피로한 상태였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부상까지 당하면서 19경기 1골 4어시스트로 부진했고, 이듬해엔 2005년에는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2차전에서 골을 기록하는 등 <ref> 당시에 이 골이 최성국의 왼팔에 맞고 들어가면서 [[핸드볼]]이 아니었냐는 논란에 휩싸였었다. 방송으로 보면 명백한 핸드볼인데......</ref> 팀의 우승에 공헌했지만, 가시와에서 잠시 임대되었다가 온 탓에<ref> 최성국은 가시와에서 9경기에 출전했지만 한 골도 넣지 못했다.</ref> 시즌 성적은 16경기 1골 3어시스트로 부진했다. 2006년 최성국은 35경기에 출전 9골 4도움을 기록하면서 명성을 되찾았고 [[A3 챔피언스컵]]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청소년 대표로 승승장구하던 최성국은 2003년 [[울산 현대]]의 지명을 받고 울산에 입단. 첫 시즌 27경기에 나와 7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올랐고, 팀도 승승장구하며 [[성남 일화]]와 우승경쟁을 벌였지만 당시 최강전력을 자랑하던 성남에 밀려 결국 준우승에 머물렀고, 신인왕 타이틀도 [[안양 LG]]의 [[정조국]]에게 밀리며, 신인왕 자리도 놓쳤다. 하지만, 2004년 최성국은 [[2004 아테네 올림픽]] 예선과 본선에 잇달아 출전하면서, 피로한 상태였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부상까지 당하면서 19경기 1골 4어시스트로 부진했고, 이듬해엔 2005년에는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2차전에서 골을 기록하는 등 <ref> 당시에 이 골이 최성국의 왼팔에 맞고 들어가면서 [[핸드볼]]이 아니었냐는 논란에 휩싸였었다. 방송으로 보면 명백한 핸드볼인데......</ref> 팀의 우승에 공헌했지만, 가시와에서 잠시 임대되었다가 온 탓에<ref> 최성국은 가시와에서 9경기에 출전했지만 한 골도 넣지 못했다.</ref> 시즌 성적은 16경기 1골 3어시스트로 부진했다. 2006년 최성국은 35경기에 출전 9골 4도움을 기록하면서 명성을 되찾았고 [[A3 챔피언스컵]]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
 +
  
  
17번째 줄: 27번째 줄:
  
 
2006년 K리그 우승을 차지한 성남은 공격라인의 강화를 위해 최성국을 영입하기로 판단을 내렸고, 울산에 약 12억을 주면서 최성국을 데려왔다. 최성국은 이적 첫 시즌 28경기에 나와 3골 2도움을 기록했다, 기록면으로 보면 부족한 활약일 수 있었으나 최성국이 뚫어준 활로에 [[모따]], [[두두]]가 골을 넣으면서 최성국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고, 이듬해 7골 3도움을 기록하면서 제몫을 해냈지만, 2007년에는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포항에 밀려, 2008년에는 [[전북 현대]]에 밀리면서 우승에 실패했다.  
 
2006년 K리그 우승을 차지한 성남은 공격라인의 강화를 위해 최성국을 영입하기로 판단을 내렸고, 울산에 약 12억을 주면서 최성국을 데려왔다. 최성국은 이적 첫 시즌 28경기에 나와 3골 2도움을 기록했다, 기록면으로 보면 부족한 활약일 수 있었으나 최성국이 뚫어준 활로에 [[모따]], [[두두]]가 골을 넣으면서 최성국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고, 이듬해 7골 3도움을 기록하면서 제몫을 해냈지만, 2007년에는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포항에 밀려, 2008년에는 [[전북 현대]]에 밀리면서 우승에 실패했다.  
 +
 +
  
  
22번째 줄: 34번째 줄:
  
 
최성국은 2009년 상무에 입대했고, 당연히(?) 붙박이 주전 공격수로 낙점을 받으면서, 첫 해부터 28경기 9골 3도움을 기록, 상무 돌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이듬해인 2010년에도 24경기 4골 2도움을 기록하고 9월 전역하여 성남에서 4경기를 더 뛰었다.  
 
최성국은 2009년 상무에 입대했고, 당연히(?) 붙박이 주전 공격수로 낙점을 받으면서, 첫 해부터 28경기 9골 3도움을 기록, 상무 돌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이듬해인 2010년에도 24경기 4골 2도움을 기록하고 9월 전역하여 성남에서 4경기를 더 뛰었다.  
 +
 +
  
 
== 수원 시절 ==
 
== 수원 시절 ==
  
 
최성국은 2011년 시즌 전 12억원의 이적료로 수원으로 이적했다. 재정난이었던 성남이 더 이상 최성국을 유지할 수 없었단 이유였다.<REF> 하지만, 항간에는 승부조작 혐의를 감지한 성남에서 재빨리 팔기 위해 수원에 제의했다는 설도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REF> 최성국은 입단 1주일만에 팀의 주장을 맡으면서, 솔선수범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시즌에 들어서자, 최성국은 골욕심에 치우친 나머지 패스하기를 꺼렸고, 주장이라는 선수가 팀에 도움이 안되는 플레이를 하면서 수원은 무승의 늪에 빠져만 갔다. 그 무렵 승부조작 파문의 칼끝이 최성국을 겨누자 최성국은 워크샵에서 "나는 결백하다"라고 주장했지만, 7월의 첫날, 승부조작 모의에 참석한 사실을 시인하였고, 이후 드러난 검찰 조사에서 김동현을 꼬드긴 브로커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최성국의 주장은 모두 거짓말로 드러났다. 최성국이 받은 돈은 고작 400만원 선수 연봉에 10분의 1도 안되는 돈 때문에 선수인생 종치게 생겼다.  
 
최성국은 2011년 시즌 전 12억원의 이적료로 수원으로 이적했다. 재정난이었던 성남이 더 이상 최성국을 유지할 수 없었단 이유였다.<REF> 하지만, 항간에는 승부조작 혐의를 감지한 성남에서 재빨리 팔기 위해 수원에 제의했다는 설도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REF> 최성국은 입단 1주일만에 팀의 주장을 맡으면서, 솔선수범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시즌에 들어서자, 최성국은 골욕심에 치우친 나머지 패스하기를 꺼렸고, 주장이라는 선수가 팀에 도움이 안되는 플레이를 하면서 수원은 무승의 늪에 빠져만 갔다. 그 무렵 승부조작 파문의 칼끝이 최성국을 겨누자 최성국은 워크샵에서 "나는 결백하다"라고 주장했지만, 7월의 첫날, 승부조작 모의에 참석한 사실을 시인하였고, 이후 드러난 검찰 조사에서 김동현을 꼬드긴 브로커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최성국의 주장은 모두 거짓말로 드러났다. 최성국이 받은 돈은 고작 400만원 선수 연봉에 10분의 1도 안되는 돈 때문에 선수인생 종치게 생겼다.  
 +
 +
 +
  
 
== 에피소드 ==
 
== 에피소드 ==
  
 
* 최성국은 '보성국' 으로 불리고 있는데, 올림픽 대표팀 시절 한장의 사진이 발단이었는데, 수영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최성국의 바지가랑이가 절묘하게 파이면서 '보성국'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 최성국은 '보성국' 으로 불리고 있는데, 올림픽 대표팀 시절 한장의 사진이 발단이었는데, 수영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최성국의 바지가랑이가 절묘하게 파이면서 '보성국'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
 +
  
 
[[File:보성국.jpg|200픽셀|섬네일|오른쪽|보성국]]
 
[[File:보성국.jpg|200픽셀|섬네일|오른쪽|보성국]]
 +
 +
  
 
* 올림픽 대표팀 이후 CF가 들어왔는데 [[피자나라 치킨공주]] CF였다. 이 CF로 최성국은 [[피자나라 치킨성국]]으로 나름 어린이들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del> 하지만 승부조작으로 망해써요</del>
 
* 올림픽 대표팀 이후 CF가 들어왔는데 [[피자나라 치킨공주]] CF였다. 이 CF로 최성국은 [[피자나라 치킨성국]]으로 나름 어린이들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del> 하지만 승부조작으로 망해써요</del>

2011년 7월 12일 (화) 03:36 판

최성국(崔成國, 1983년 2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공격수이다. 현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으로 뛰고 있다.

현재 승부조작 사건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성남시절 최성국과 김동현 보니까 브로커들이네



유소년 시절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동곡초등학교, 역곡중학교, 정명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를 중퇴하였다. 167cm로 단신이었던 최성국은 민첩하고, 개인기가 좋아 환상적인 드리블로 상대 수비 2, 3명을 쉽게 따돌리는 점이 디에고 마라도나와 닮았다는 점에 착안하여 '리틀 마라도나'라는 별명이 붙었다. 최성국은 뛰어난 활약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정조국과 함께 대표팀의 훈련생으로 뽑혔고,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도 우승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다.



울산 시절

청소년 대표로 승승장구하던 최성국은 2003년 울산 현대의 지명을 받고 울산에 입단. 첫 시즌 27경기에 나와 7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올랐고, 팀도 승승장구하며 성남 일화와 우승경쟁을 벌였지만 당시 최강전력을 자랑하던 성남에 밀려 결국 준우승에 머물렀고, 신인왕 타이틀도 안양 LG정조국에게 밀리며, 신인왕 자리도 놓쳤다. 하지만, 2004년 최성국은 2004 아테네 올림픽 예선과 본선에 잇달아 출전하면서, 피로한 상태였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부상까지 당하면서 19경기 1골 4어시스트로 부진했고, 이듬해엔 2005년에는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2차전에서 골을 기록하는 등 [1] 팀의 우승에 공헌했지만, 가시와에서 잠시 임대되었다가 온 탓에[2] 시즌 성적은 16경기 1골 3어시스트로 부진했다. 2006년 최성국은 35경기에 출전 9골 4도움을 기록하면서 명성을 되찾았고 A3 챔피언스컵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성남 시절

2006년 K리그 우승을 차지한 성남은 공격라인의 강화를 위해 최성국을 영입하기로 판단을 내렸고, 울산에 약 12억을 주면서 최성국을 데려왔다. 최성국은 이적 첫 시즌 28경기에 나와 3골 2도움을 기록했다, 기록면으로 보면 부족한 활약일 수 있었으나 최성국이 뚫어준 활로에 모따, 두두가 골을 넣으면서 최성국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고, 이듬해 7골 3도움을 기록하면서 제몫을 해냈지만, 2007년에는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포항에 밀려, 2008년에는 전북 현대에 밀리면서 우승에 실패했다.



상무 시절

최성국은 2009년 상무에 입대했고, 당연히(?) 붙박이 주전 공격수로 낙점을 받으면서, 첫 해부터 28경기 9골 3도움을 기록, 상무 돌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이듬해인 2010년에도 24경기 4골 2도움을 기록하고 9월 전역하여 성남에서 4경기를 더 뛰었다.


수원 시절

최성국은 2011년 시즌 전 12억원의 이적료로 수원으로 이적했다. 재정난이었던 성남이 더 이상 최성국을 유지할 수 없었단 이유였다.[3] 최성국은 입단 1주일만에 팀의 주장을 맡으면서, 솔선수범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시즌에 들어서자, 최성국은 골욕심에 치우친 나머지 패스하기를 꺼렸고, 주장이라는 선수가 팀에 도움이 안되는 플레이를 하면서 수원은 무승의 늪에 빠져만 갔다. 그 무렵 승부조작 파문의 칼끝이 최성국을 겨누자 최성국은 워크샵에서 "나는 결백하다"라고 주장했지만, 7월의 첫날, 승부조작 모의에 참석한 사실을 시인하였고, 이후 드러난 검찰 조사에서 김동현을 꼬드긴 브로커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최성국의 주장은 모두 거짓말로 드러났다. 최성국이 받은 돈은 고작 400만원 선수 연봉에 10분의 1도 안되는 돈 때문에 선수인생 종치게 생겼다.



에피소드

  • 최성국은 '보성국' 으로 불리고 있는데, 올림픽 대표팀 시절 한장의 사진이 발단이었는데, 수영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최성국의 바지가랑이가 절묘하게 파이면서 '보성국'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보성국


  • 올림픽 대표팀 이후 CF가 들어왔는데 피자나라 치킨공주 CF였다. 이 CF로 최성국은 피자나라 치킨성국으로 나름 어린이들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승부조작으로 망해써요


참조

  1. 당시에 이 골이 최성국의 왼팔에 맞고 들어가면서 핸드볼이 아니었냐는 논란에 휩싸였었다. 방송으로 보면 명백한 핸드볼인데......
  2. 최성국은 가시와에서 9경기에 출전했지만 한 골도 넣지 못했다.
  3. 하지만, 항간에는 승부조작 혐의를 감지한 성남에서 재빨리 팔기 위해 수원에 제의했다는 설도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