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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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jpg
제 1회 대회 당시 광고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는 1971년 제 1회 대회를 시작으로 1999년 제 23회 대회로 마무리될 때 까지 대한축구협회가 개최한 국제축구대회이다.




명칭[편집]

초기에는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1971~1975)로 불리우다, 박대통령컵 쟁탈 국제축구대회(1976~1979)를 거쳐 1980년부터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1980~1993)로, 마지막에는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1995~1999)로 명칭이 변경되는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정식 명칭보다는 박스컵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역사[편집]

1970년,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었던 장덕진 씨가 제 6회 아시안게임 축구 금메달 축하연에서 아시아규모의 국제축구대회를 한국에서 해마다 개최하겠다고 천명하면서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구상된 것이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의 시작이었다. 장덕진 씨는 당시 재무부차관보라는 지위와 더불어 육영수 여사의 가까운 친인척이라는 인맥을 동원해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개최를 추진하였으며, 박 대통령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전용 우승컵을 하사(?)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대회 개최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1년 대회부터 1975년 대회까지는 아시아 국가에 한정된 대회였으나 1975년 방한한 당시 FIFA 회장인 주앙 아벨란제의 주선으로 브라질 주리그 대표들도 방한하여 동대회에 참가함에 따라 국제 규모(?)의 축구대회로 발전하였다.

1971년 5월 2일부터 15일까지 서울에서 제 1회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가 개막한 이래로 1989년까지 매년 대회가 개최되었다. (1986년 제외) 1991년부터는 2년 주기로 대회가 치루어지다 1999년 코리아컵 대회를 끝으로 폐지되었다. 2001년 개최를 검토했지만 컨페더레이션스컵 개최로 열리기 않았고 2003년엔 국가대표 훈련일정을 이유로 열리지 않았다. 여기에 FIFA아시안컵 등 대륙컵대회의 권위를 높여야한다는 명분으로 메르데카배컵, 재팬컵, 킹스컵 등 아시아 군소대회의 개최에 태클을 놓던차라 박스컵도 궤를 같이하여 없어지고 말았다


역대 대회 결과[편집]

횟수 연도 대회 명칭 우승국 결승전
스코어
준우승국 비고
제1회[1] 1971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 대한민국버마 공동 우승 0:0 첫번째 대회
제2회[2] 1972 버마 3:1 인도네시아 대한민국 3위
제3회 1973 버마크메르 공동 우승 0:0 대한민국 3위
제4회 1974 대한민국 7:1 인도네시아 PSMS 메단[3]
제5회 1975 대한민국 1:0 버마
제6회 1976 박대통령컵 쟁탈 국제축구대회 대한민국 화랑대표팀,
브라질[4] 공동우승
1:0 충무대표팀 3위[5]
제7회[6] 1977 브라질 1:0 대한민국 화랑대표팀
제8회[7] 1978 대한민국 화랑대표팀 6:2 워싱턴 디플로메츠 충무대표팀 3위
제9회[8] 1979 브라질 비토리아 FC 2:1 대한민국 화랑대표팀 충무대표팀 4위
제10회[9] 1980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대한민국 화랑대표팀 2:0 인도네시아
제11회[10] 1981 대한민국 화랑대표팀,
라싱 코르도바 공동 우승
2:2
제12회[11] 1982 대한민국 화랑 대표팀,
오페라리우 공동 우승
0:0 할렐루야 4위
제13회[12] 1983 PSV 아인트호벤 3:2 대한민국 화랑 대표팀
제14회[13] 1984 방구 AC 2:1 할렐루야 축구단 대한민국 4위
제15회[14] 1985 대한민국 1:0 88 올림픽대표팀
제16회 1987 대한민국 A팀 1:1 (5 PK 4) 호주
제17회 1988 체코 슬로바키아 2:1 소련
제18회 1989 체코 슬로바키아 2진 리그전 덴마크 브론드비 청룡 3위
제19회 1991 대한민국(청룡) 2:0 이집트
제20회 1993 이집트 1:0 대한민국 A팀
제21회 1995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에콰도르 리그전 잠비아 대한민국 3위
제22회 1997 대한민국 리그전 유고 슬라비아
제23회 1999 크로아티아 리그전 멕시코 대한민국 3위


각 대회 설명[편집]

  1. 청룡 국가대표팀이 참가해 버마와 공동 우승을 차지하였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2. 1972년 9월 20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대회에 출전국은 한국, 태국, 크메르, 말레이시아, 버마, 인도네시아, 싱가폴, 필리핀이었다. 한국은 준결승까지는 무난하게 진출하였으나, 준결승 상대로 전대회 공동우승팀인 버마를 만났고, 버마는 전반 23분 터진 결승골을 잘지켜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한국은 후반 PK를 얻었으나, 키커인 김진국 선수가 이를 놓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이후 한국은 3,4위전에서 말레이시아를 박수덕의 결승골로 누르고 3위를 차지하였다.
  3. 한국을 제외하고 모든 참가국들이 2진급 대표를 보내거나 국가대표가 아닌 시대표를 보냈다. 인도네시아 PSMS팀은 메단시 대표였다. -_-; 이와 같은 초청팀의 빈약함에 대해 당시부터 말이 많았는데 이는 한국팀을 어떻게든 박스컵 우승하게 만들려는 축구협회측의 꼼수였다는게 중론이다.
  4. 이 대회부터 브라질, 뉴질랜드 팀이 참가하면서 아시아를 넘어 대륙간 컵대회로 발전하였다. 당시는 브라질 국가대표팀이라고 소개되었으나 당연히 그럴리 없었고, 상파울루주 21세이하 대표팀이었다.
  5. 이 대회는 국가대표팀 2진이었던 충무대표팀도 박스컵에 참가하였다.
  6. 이 대회에는 처음으로 영국팀도 참가하였는데 미들섹스 원더러스라는 선교 목적의 아마축구팀이었다. 이 대회에 참가해 화랑팀에 6:1로 발리는등, 1승 3패의 초라한 성적을 기록해, 진짜 영국팀 맞냐는 핀잔을 들었다.
  7. 이 대회에는 미국 올림픽대표 2진, 미국 프로팀인 워싱턴 디플로메츠, 서독, 모로코, 이란, 브라질 상파울루 주리그 대표등, 바레인, 뉴질랜드 등 각 대륙 대표팀이 모두 참가한 명실상부한(?) 세계축구대회로 치루어졌다.
  8. 올림픽 예선을 앞두고 전력 노출을 꺼린 아시아 국가들이 참가를 거부함에 따라 스리랑카, 수단, 방글라데시 등 수준 떨어지는 팀들만 참가해 결승전을 제외하고는 제대로된 경기가 없었다고 혹평을 들었다. 급기야 동대회를 국고보조했던 문교부측은 2억이나 보조해줬는데도 그따위 저질팀만 초청해왔느냐고 대학축구협회와 대한체육회 관련 인사들을 문책했다.
  9. 점입가경이라고 1979년보다 더 수준떨어지는 팀초청으로 빈축을 샀다. 당초 튀니지, 이란, 일본등의 참가가 예정되었으나 모두 불참 통보를 해옴에 따라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바레인만이 참가했던것.
  10. 전두환의 3S 정책의 일환이었는지는, 이 대회는 8억이나 국고보조를 타내서 초청팀들의 수준을 한껏 올리는데 성공했다. 이 대회는 우루과이의 다누비오 FC, 아르헨티나의 라싱 코르도바, 프랑스 2부의 샤토루 FC, 서독 자르브뤼켄 FC, 브라질 비토리아 FC 등 총 11개팀이 참가해 역대 대회중 가장 화려한 대회로 꼽힌다. 재밌는건 이 대회에서 다누비오 FC 감독은 출사표를 던지며 라싱 코르도바? 그건 뭐하는 듣보잡 지방팀? 우승은 우리꺼 ㅋㅋ라고 디스했으나 라싱과는 붙지도 못하고 화랑한테 준결승에서 털려서 탈락했다.
  11. 허정무 선수가 뛰고있던 PSV 아인트호벤, 브라질 축구클럽인 오페라리우, 서독의 레버쿠젠을 비롯해 할렐루야 독수리 축구단, 태국, 바레인, 인도 등이 참가해 화제를 모았다. 재밌는건 이때만 해도 레버쿠젠은 완전 듣보잡 팀 취급을 받았다는것. 당시 기사를 보면 뒤셀도르프 FC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팀으로 평가했던 기록이 있다. 안습. 실제로 레버쿠젠은 이때 할렐루야에게도 5:0으로 발리는등 한심한 경기끝에 예선탈락했었다.
  12. 세리에 A의 제노아 FC, 유공 코끼리, 미국, 뉴질랜드, 나이지리아, 가나, PSV 아인트호벤 등 10개국 11개팀이 참가했다. 이때도 해외 프로팀들이 초청비만 받고 2군을 내보내며 설렁설렁 뛰어 빈축을 샀다. 물론 그렇게 대충뛰는 상대팀에게 져서 준우승한 화랑대표팀은 더더욱 웃음거리가 됐지만.. -_- 덧붙여 PSV에서 뛰고있었던 허정무 선수가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한국복귀를 결정하면서 PSV와 허정무의 고별전이 되었다. 뱀발로 직전대회인 1982년 대회부터 경품추첨이 도입되었는데, 이 대회 집행위원회 내부에서 경품 조작 사건이 터져 개망신을 당했다.
  13. 처음으로 대회 상금을 6만달러나 걸어 화제가 되었던 대회로, 상금은 우승팀 3만, 준우승 2만, 3위 1만 순이었다. 참가팀은 레버쿠젠, 할렐루야, 벨기에의 클럽 브루게 KV, 페루, 브라질, 과테말라 등 총 8개팀이 참가하였다. 준결승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와 할렐루야가 격돌했는데 이기면 2만달러가 생긴다는데 눈에 불을 켠 할렐루야 선수들의 적극적인 플레이에 완전히 당황한 한국대표팀은 준결승서 패배하며 탈락해버렸다. 특기할만한건 이대회가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흑자대회라는것이다.
  14. 서울, 대전, 광주, 대구 4개 도시에서 순연되었으며 11개국 12개팀이 참가하여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88 올림픽대표팀이 대통령배국제축구대회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대회기간동안 벌어진 28경기에서 98골이나 득점이 터지며 공격축구로 관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였으며, 결승전에서 88 올림픽대표팀과 86년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이 맞붙게 되었을때는 잠실주경기장에 5만명이나 관중이 모여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뤘다는 평을 들었다. 결승전은 변병주의 골로 월드컵 대표팀의 승리.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 [1] (박스컵과 대통령배 축구대회, 그리고 코리아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