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풋케위키, 대한민국 대표 축구위키 FootballK WIKI-
F1tuscani (토론 | 기여)님의 2011년 10월 11일 (화) 15:32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수원 시절의 데니스

데니스 블라디미로비치 락티노프(러시아어: Денис Владимирович Лактионов, 영어: Denis Vladimirovich Laktionov, 1977년 9월 4일 ~ )는 러시아계 대한민국 축구 선수로, 1996년부터 2006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한 선수이다. K리그 대한민국 국적 귀화선수 2호이기도 하다.


프로필

  • 이름 : Denis Vladimirovich Laktionov
  • 등록명 : 데니스 -> 이성남 -> 데니스
  • 출생일 : 1977년 9월 4일
  • 신체 : 178cm / 74kg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 수상 경력
K리그 도움왕 1997년
FA컵 득점왕 1996년
K리그 컵대회 득점왕 1999년
K리그 베스트 11 1999년, 2000년, 2003년
  • 국가대표 경력
1998 ~ 2002년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 (A매치 9경기 2골)
  • 특기 사항
K리그 외국인 최초이자 유일한 50-50 클럽 가입자
K리그 외국인 역사상 2호 귀화 선수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수원 삼성 1996 20 23 5 3 2 0
수원 삼성 1997 10 10 2 5 2 0
수원 삼성 1998 18 9 5 4 5 1
수원 삼성 1999 20 16 7 10 4 0
수원 삼성 2000 27 13 10 7 7 0
수원 삼성 2001 36 12 7 3 5 0
수원 삼성 2002 20 15 5 7 5 0
성남 일화 2003 38 16 9 10 6 0
성남 일화 2004 21 10 4 2 1 0
성남 일화 2005 20 6 1 6 6 0
부산 아이파크 2005 5 4 0 0 1 0
수원 삼성 2006 16 14 0 2 4 0
통산(K리그) - 261 105 56 57 47 1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0년 3월 1일 기준.


K리그 이전

데니스는 1994년 FC 사할린 홀름스크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고, 1995 시즌에 32경기에서 12골을 넣으며 팀내 최다득점자에 올랐다. 하지만 팀은 시즌이 끝난 뒤 러시아 2부 리그에서 러시아 3부 리그로 강등당하여 프로 클럽으로의 지위를 상실하였고, 결국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18살에 불과하던 때였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1995년 12월 창단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창단 첫해 K리그 우승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1996 애틀란타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을 우선지명하며[1] , 힘찬 시동을 걸었다. 수원은 이러한 호화멤버에 걸맞는 외국인 선수의 영입을 원했고, 이에 바데아, 유리, 아디 등 해외에서 검증된 외국인 선수들을 보강했다. 이때 김호 감독은 러시아에서 데니스를 찾아냈고 이적료 20만달러 연봉 3천만원에 입단 계약을 체결하였다. 18살에 불과한 외국인 선수가 국내에 적응하겠나라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김호감독은 데니스를 주용했고, 데니스는 보란듯이 프로 첫 시즌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데니스는 첫해 20경기에 출장, 5골과 3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소속팀 수원의 후기리그 우승과 FA컵 결승진출을 이끌어내었다. 이후 데니스는 수원의 화려한 전성기와 함께했다. 팀 전체가 부진에 빠졌던 1997년과 불미스러운 일 (하단 에피소드 참조)로 6개월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1998년을 제외하고,[2] 데니스는 수원에서 매년 20경기 넘게 출장했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득점과 도움을 기록하면서 수원이 명문구단으로 도약하는데 1등공신이 되었다. 특히 2000년 산드로C가 들어오면서 고종수 - 데니스 - 산드로로 이어지는 고-데-로 트리오는 상대팀들을 벌벌 떨게하는데에 충분했고, 수원은 이 트리오를 바탕으로 2001년과 2002년 아시아클럽선수권아시아위너스컵을 연속으로 재패하는데 성공했다.

성남 일화 천마 시절

성남시절의 데니스

수원에서 성공적인 나날들을 보낸 데니스는 유럽진출을 원하고 있었고, 이에 동의한 구단도 데니스를 놓아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데니스의 선택은 유럽이 아닌 성남 일화 천마였다. 성남은 2001년, 02년 K리그를 재패했고, 2003년 초호화급 스쿼드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성남은 전북에서 김도훈을 영입한데 이어 박충균이기형의 영입을 확정지었고, 성남은 이적료만 150만달러라는 엄청는 금액으로 데니스를 데려오는데 합의하였다. 계약기간은 2년에(계약료 50만달러) 연봉 36만달러(연간 18만달러), 경기당 출전수당 2천500달러였다. 기존의 초호화 멤버에 데니스까지 가세하자 성남은 K리그 최강의 위용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성남으로 이름을 바꾼 데니스는 2008년 38경기에 나와 9골 10도움을 기록했고, 성남은 일찌감치 2003 삼성 하우젠 K리그 우승을 확정짓게 되었다. 2004년에도 데니스는 21경기 4골 2도움을 기록한데 이어 2005년 20경기 1골 6도움을 기록했다.

부산 아이파크 시절

2005년 전기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부산 아이파크는 후기리그 경기력이 완전히 떨어져있었고, AFC 챔피언스리그K리그 플레이오프 준비에 비상이 걸려있던 상황이었다. 이에 부산은 검증된 선수를 원했고 이성남을 6개월간 임대해 오는데 성공했다. 이성남은 부산에서 5경기에 출전했지만,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고 팀도 중요하게 걸려있던 두개 대회에 모두 탈락하고 말았다. 이성남은 짧은 부산생활을 마치고 원소속팀 성남으로 복귀하였다.

다시 수원 시절

성남으로 돌아왔지만, 주전경쟁에서 승산은 없어보였고, 이에 이성남은 친정팀 수원으로의 복귀를 추진하게 되었다. 수원은 이성남의 영입을 위해 당시 주축선수였던 안효연을 성남에 보내고 이성남을 데려오게 되었다. 이때 등록명이 다시 데니스로 바뀌게 되었다.


이성남 (성남 일화 천마) <---> 안효연(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6 K리그 개막전 FC GS와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로 출전한 데니스는 패널티킥을 이끌어내며 활약하였고, 후반기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도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후기리그 우승에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듬해 데니스는 서혜부 부상을 당하면서 장기간 재활에 돌입했고, 끝끝내 재활에 실패하며 수원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리고 말았다.

K리그 이후

수원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데니스는 2008년 러시아 1부 리그의 FC 시비르 노보시비르스크로 이적하여 러시아 무대로 복귀하였으나, 두 시즌동안 27경기 출전에 그치며 재계약에 실패하였고, 이후 선수생활을 정리하였다. 현재 데니스는 FC 톰 톰스크의 코치로 활약하고 있는 중이다.

플레이스타일

76cm의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며, 폭발적인 순간 스피드와 공간활용 능력이 빼어나다. 문전에서의 파워넘치는 돌파 또한 데니스의 장점 중 하나이다


에피소드

문제의 김주성 폭행장면
  • 1998년 9월 23일 구덕운동장에서 벌어진 부산 대우 로얄즈와의 경기에서 데니스는 후반 김주성이 자신을 때리자 곧바로 보복폭행을 하였고 곧바로 주심의 퇴장명령을 받았다. 거세게 항의하던 데니스는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넘어져 있는 김주성의 목을 밟았다. 이에 흥분한 구덕 관중들이 물병을 던지는 등 그라운드는 난장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근데 하필 이경기가 KBS를 통해 중계되고 있었다는게 문제였다. 결국 상벌위원회에서 데니스는 7개월 출장정지에 벌금 350만원, 원인제공 당사자 김주성은 2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에 데니스는 너무 출장정지 처분이 과하다라며 분통을 터뜨렸고, 이에 연맹은 참작하여 6개월로 기간을 줄여주었다. 이럴거면 기간을 줄이지 말든가 -_-;;;
  • 성남으로 이적한 데니스는 곧바로 귀화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였고, 성남 이(李)씨를 시조로 하여 이성남으로 귀화하였다. 이에 수원팬들은 데니스를 키워준 수원을 버리고 성남의 이름을 택하냐라고 욕을 하기도 하였다. 러시아로 복귀한 이후에도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여, 외국인 선수로 분류되었다.
  • 성남으로 이적한 데니스는 유독 수원고의 경기에서 강점을 보였는데, 그때마다 수원 서포터들을 도발하는 세레모니를 보여주며 수원팬들의 미움을 받았다. 근데 2006년 복귀.... 세상일이란 정말 모르는거다.


참조

  1. 당시 애틀란타 올림픽대표 선수들 중에 수원에 지명된 선수로는 이기형, 이경수, 박충균. 그리고 본선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올림픽 아시아예선에서 맹활약하였던 이운재, 조현두, 조현, 이병근 등이 있었다
  2. 그때도 데니스는 18경기에 출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