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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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은(吳章銀, 1985년 7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이다. 현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으로 뛰고 있다.



유소년 시절

제주도 서귀포시 출생으로 서귀포초등학교와 조천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서귀포초등학교 4학년 시절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한 오장은은 조천중학교 시절이던 2000년 11월 오장은은 벨기에로 축구 유학을 몰렌벡 유스팀에 입단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봤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FC 도쿄 시절

국내로 돌아온 오장은은 2001년 서귀포고 시절 오장은은 연습경기 도중 당시 수원코치이던 윤성효의 눈에 띄어 고교를 중퇴, 수원 2군에 몸담았으며, 2002년 일본 J리그 FC 도쿄에 입단하였다. 그리고 2002년 4월 13일 감바 오사카와의 경기에서 0-3으로 뒤진 후반 9분 사토와 교체투입돼 만 16세8개월의 기록으로, 2001년, 아베 유키가 세웠던 최연소출장기록을 2개월 가량 앞당겼다. [1] 이후 오장은은 외국인 용병 제한에 걸려 출전시간이 많지는 못했지만, 조커로써 FC도쿄에서 기회를 잡으며, 3시즌동안 13경기에 출전했다.[2] 이러한 기량을 인정받아 오장은은 U-19 대표팀에도 발탁되는 등 최고의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대구 FC 시절

2005년 오장은은 국내로 돌아왔고, 여러팀들이 오장은을 노리고 있었다. 특히 대구가 가장 적극적이었는데, 노상래, 오주포의 은퇴로 중원이 취약했던 대구는 오장은을 영입하길 원했고, 오장은은 대구 FC의 끈질긴 구애로 대구의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 당시 오장은은 U-20 월드컵 멤버로 뽑혀있었기 때문에 초반에는 많은 활약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회가 끝나고 오장은은 대구를 변신시키기 시작했다. 입단 첫해인 2005년 24경기 4골을 폭발시킨 오장은은 이듬해 34경기 6골로 맹활약했다. 비록 대구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아깝게 실패했지만, 대구가 이러한 자리까지 올라오게 된 데에는 오장은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울산 현대 시절

2006년 대구와의 계약이 만료되어 FA시장으로 나온 오장은은 마찬가지로 여러팀들의 구애를 받았다. 이에 적극적인 구단은 울산 현대였다. 당시 울산은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위해 떠난 김정우의 대체자를 찾고 있었고,[3] 오장은을 낙점하면서 영입에 성공했다. 당시 울산의 김정남 감독은 "모든 공격의 시발점은 오장은으로 재편된다"라고 선언했고, 이에 부응하듯이 오장은도 안정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울산을 이끌었다. 2007시즌 27경기에 출장 1골을 기록하며 울산의 리그 컵 우승과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일조한 오장은은 2008년에도 36경기 3골로 활약하며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2009년에는 32경기에 출장하며 6골을 기록, 커리어 사상 최다골을 기록했고, 2010년에도 35경기 3골을 기록하면서 울산 현대의 미드필더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국가대표에서도 활약이 좋았다.



수원 삼성 시절

울산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오장은은 수원에게 있어서 더없이 좋은 중원 자원이었다. 신임 윤성효 감독 부임이후 대대적인 리빌딩을 가진 수원에게 있어서 오장은의 역할을 절대적이었고, 자신을 프로에 있게 해준 윤성효 감독의 제안을 거절 할 수 없었던 오장은은 수원으로 이적했다. 당시, 울산과 계약 협상이 틀어지면서 무산 될 위기에 처했지만, 다행히 이적에 성공했다. [4] 개막전 FC GS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신고한 오장은은 이후 경기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수원을 이끌고 있다.




에피소드

  • 오장은은 재일 교포인 이충성 선수와 친하고, 2004년 청소년 대표팀 테스트에서 이충성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러나 2007년 이충성이 일본으로 귀화를 한 뒤 그 이유가 국가대표 팀 선수들의 차별이라고 말했고, 오장은은 매우 섭섭하다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둘의 관계가 이전만큼 친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 오장은은 오른쪽 발가락이 없다. 어린시절 벽돌에 찧이는 사고로 인해 발가락이 절단되고 만 것, 이에 오장은은 굴하지 않고 축구선수 생활을 계속해나가고 있으며 이는 많은 축구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 '오짱'이라는 별명은 일본 시절 붙여진 별명이다. 현재 오장은 경기를 보기위해 일본에서 오는 팬들도 있다. 직접봤다 ㄷㄷㄷㄷ


참조

  1. 하지만 이 기록은 2004년 모리모토 다카유키(당시 도쿄 베르디)가 15세 10개월로 데뷔하며, 2년만에 타이틀을 내줬다
  2. 2003년 레알 마드리드와의 친선전에도 선발 출전하기도 했다. 와우~
  3. 김정우는 프리미어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4. 당시 오장은은 조원희와의 트레이드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조원희가 뜬금없이 광저우 헝다로 입단을 하는 바람에 이 트레이드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던 것, 다행히 조원희 대신 현금을 주고 데려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