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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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tuscani (토론 | 기여)님의 2011년 7월 8일 (금) 03:5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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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시절의 염기훈

염기훈(廉基勳, 1983년 3월 30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다. 현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으로 뛰고 있다.


프로필

  • 이름 : 염기훈


  • 리그 기록 (실업 포함) :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전북 현대 모터스 2006 31 7 7 5 1 0
전북 현대 모터스 2007 18 3 5 3 1 0
울산 현대 2007 3 0 1 0 0 0
울산 현대 2008 19 11 5 1 0 0
울산 현대 2009 20 10 3 3 0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0 19 4 10 0 0
통산 (K리그) - 125 50 26 26 2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3월 1일 기준.

유소년 시절

전라남도 해남군 출생으로 강경상업고등학교, 호남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유명하지 않은 고등학교를 나온 탓에 주목을 받기 힘들었고, 대학시절에 점점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전북 현대 시절

대학시절 두각을 나타낸 염기훈은 2006년 K리그 드래프트가 부활하면서 호남대의 연고구단 격이라 할 수 있는 전북 현대 모터스의 우선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당시 최강희 감독은 왼발 프리키커가 능숙하고 게임센스가 뛰어난 염기훈을 주전 미드필더로 낙점했고, 염기훈도 이에 부응하듯 3월 29일 대전 시티즌 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리는 등 주전으로써의 입지를 다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7월 동료인 김형범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도중 언덕을 세 바퀴 반이나 도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염기훈은 머리와 왼팔에 부상을 입었고, 한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1] 다행히 염기훈은 부상에서 회복되었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후반에만 1골 1도움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하면서 팀의 결승진출을 이끌었고, 알카라마와의 결승 1차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면서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리그에서도 염기훈은 7골 4도움을 기록하면서 국가대표팀에도 뽑히는 영광을 얻었고, 시즌종료 후 K리그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2006년을 염기훈의 해로 만들었다.

2007년에도 염기훈은 주전 미드필더로 낙점받으면서 활약했다. 염기훈은 전반기에만 18경기에 나와 5골 3도움을 기록하면서 2년차 징크스는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울산 현대 시절

2007년에도 맹활약을 펼치던 염기훈은 미드필드진 보강에 고심해오던 울산에게 있어서 알맞는 카드였고, 울산은 임유환과 정경호를 주고 염기훈을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2]



울산은 염기훈을 활용하여 이천수마차도, 알미르의 공격력을 극대화 하겠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염기훈은 입단하자마자 발등뼈 골절로 수술을 받으면서, 후반기를 거의 통으로 쉬었고, 성적도 3경기 1골에 그쳤다. 이듬해인 2008시즌 염기훈은 절치부심하면서 시즌을 준비했지만 4월 수원과의 원정경기에 전반 18분만에 엄지 발가락 골절로 교체아웃 되면서 전반기를 마감했다. 후반기 다시 돌아온 염기훈은 플레이오프 전북과의 경기에서 헤딩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제 몫을 하는가 싶었지만, 시즌 종료 후 구단과의 상의 없이 프리미어리그 웨스트 브롬위치 진출을 추진하면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결국 못갔잖아 2009년에도 부상의 악령은 염기훈을 비껴가지 않았다. 2라운드 전북전을 앞두고 발가락 피로골절로 전반기 아웃. 후반기 복귀했지만 부상 여파로 20경기 3골 3도움에 그쳤다.


수원 삼성 시절

2009년 FA컵 우승을 차지했지만, 리그에서는 11위에 그쳤던 수원에게 있어서 필요한 선수는 패스 메이커였다. 이에 염기훈은 수원에게 있어서는 가장 좋은 자원이었고, 염기훈도 수원행이 싫지 않았다. 이에 울산은 수비수 카드를 원했고, 수원은 이재성을 임대후 완전 이적에 현금을 더 얹어주는 조건으로 염기훈의 이적을 성사시켰다.



당시 수원 팬들은 재활중이었던 염기훈을 영입하고 수비수 유망주였던 이재성을 보낸데에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재활이 끝나고 염기훈은 물 만난 고기처럼 상대진영을 휘젓기 시작했다. 염기훈의 복귀전이었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암드포스 전에서 염기훈은 2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화려한 데뷔전을 치뤘고, 정규리그에서도 활약하며,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에도 뽑히는 등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3] 월드컵 이후 윤성효 체제로 바뀌었음에도 염기훈은 팀의 플랜에 있어서 1순위였다. 팀은 비록 6강 플레이오프에 실패했지만, 염기훈은 FA컵 결승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뽑아내는 등 결정적인 활약으로 팀의 FA컵 2연패를 이끌었다. 2010년 염기훈의 성적은 1골 10 어시스트, 수원이 원하던 패스 마스터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2011년 염기훈은 기존 주장이었던 최성국을 대신하여 주장완장을 찼고 주장에 걸맞는 리더십을 보여주며, 팀을 이끌고 있다.

에피소드

  • 염기훈은 원래 왼발잡이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맨발로 자전거를 타다가 당한 사고로 오른발 수술을 받았고, 불편하던 오른발 대신 왼발을 쓰게 되면서 왼발잡이가 되었다. 염기훈의 골중에 오른발로 넣은 골이 제법 많은 편이다. 발가락으로 체중을 지탱하다보니 발가락 쪽에 부상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 전북 시절 염기훈의 별명은 '땜통', 염구였다. 교통사고로 머리에 부상을 입어 꿰메는 바람에 짧은 머리에 꿰멘 구멍이 있어 불린 별명이였다. 본인은 이 별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의 별명은 왼발의 마법사[4] 라고 불리고 있다. 마법사까진 아닌듯
  • 리그에서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지만, 유독 A매치에서는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혹자는 리그를 위해 A 매치에서 몸을 만드는 선수라고도 말한다.


수상

개인

클럽

전북 현대 모터스

수원 삼성 블루윙즈

  • FA컵 우승 1회 (2010년)

국가 대표팀


추가

  1. 당시 차를 같이 타고가던 김형범은 이 여파가 계속되어서인지 계속된 부상을 당하고 있다.
  2. 염기훈은 당초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의 이적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수원과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던 최강희 감독은 수원과의 협상이 벌어지기 직전 울산으로 먼저 트레이드를 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3. 하지만, 조별예선 2차전 아르헨티나 전에서 후반 12분 천금의 왼발 슈팅을 날려버리는 바람에 동점에 실패했고, 팀은 4대1로 대패, 온 국민에게 온갖 욕을 다 먹고 말았다.
  4. 염기훈을 까는 사람들은 아르헨티나 전에서의 행동을 보고 '왼발의 맙소사'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