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창(1948년)
이현창(1948년)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이다.
2013년 현재, 강릉시청 축구단에서 뛰고있는 이현창 선수와 구별하기 위해 풋케위키 문서명은 이현창(1948년)라 정한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이현창
- 생년월일 : 1948년생
- 유스클럽 : 중동고등학교 졸업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등번호 : -
지도자 프로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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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생활[편집]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이천중학교, 서울 중동고등학교를 나왔다. 중동고 시절 유판순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기량이 성장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무렵 무릎 부상을 크게 당해 1년 정도 경기를 뛰지 못했고 결국 대학팀의 부름을 받지 못해 은퇴를 선언하고 말았다. 이후 20세의 나이로 고향인 이천에 내려가 이천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 3년간 이천초 선수를 지도했다.[2] 이후 군대에 입대하여 24세에 전역했는데, 군시절 무릎이 좋아지면서 선수 시절 기량이 차차 회복되었고, 이후 주변의 추천으로 한국철도 축구단에 입단해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고질적인 무릎 통증으로 많은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것이 이현창 감독의 자평. 이후 30세의 나이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철도 평사원으로 전직하였다.
선수 은퇴 이후[편집]
1977년 은퇴 이후, 한국철도 평사원 (역무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이현창 씨는 1992년까지 16년동안 평사원으로 근무하다 1992년 당시 한국철도 축구단 감독이었던 강철호 씨의 부탁으로 축구단 코치로 부임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1994년 감독으로 정식 승격 후, 1995년 대통령배전국축구대회 8강, 춘계실업축구연맹전 4강, 추계실업축구연맹전 준우승을 일구어내며 실업축구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된다. 이전까지 각급 대회에서 1라운드 탈락 단골손님, 월급여 80만원과 단칸방 살이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해체설만 무수하던 한국철도 축구단을 감독 부임 1년만에 환골탈태 시킨데 성공했기 때문.[3] 이후 실업축구계에서 8번의 준우승과 2000년 춘계실업축구연맹전 우승 등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 이감독은, 2003년 출범한 K2리그에도 인천한국철도 축구단의 감독으로 도전장을 내밀어 2005년 K2리그 통합챔피언 자리에 오르며 팀을 반석에 올려놓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2006년을 끝으로 정년 퇴임하였다.
퇴임 후 고향인 이천시로 돌아온 이현창 씨는 2009년부터 챌린저스리그 팀인 이천시민축구단 창단 및 운영에 주력하며 이천 축구계의 대부로 여전히 활약 중이다.
에피소드[편집]
- 前 국가대표 선수로 널리 알려진 이을용 씨가 은사로 첫손에 꼽는 이가 바로 이현창 씨이다. 고교 졸업 후 축구인생에 위기가 닥쳤을때 이을용 선수를 구원해준 이가 당시 한국철도 감독이었던 이현창 씨이기 때문. 이을용 씨는 선수 시절“나에게는 허정무, 히딩크 등의 많은 스승들이 있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스승은 이현창 감독님이시다. 포기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기 때문”이라고 인터뷰 했던바 있다.
경력[편집]
- 1972 ~ 1977 : 한국철도 축구단 / 실업축구
- 1977 ~ 1991 : 한국철도 역무원 근무
- 1992 ~ 1993 : 한국철도 축구단 / 실업축구 (코치)
- 1994 ~ 2006 : 한국철도 축구단 → 인천한국철도 축구단 → 인천코레일 축구단 / 실업축구 → K2리그 (감독)
- 2009 ~ 현재 : 이천시민축구단 / 챌린저스리그 (감독)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 [1] (①이현창 감독, My Way..후회 없이 걸었던 45년 축구 인생)
- [2] (②이현창 감독, My Way..후회 없이 걸었던 45년 축구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