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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부산 아이파크]]에서의 대활약을 발판으로 부활하는듯 했으나, 박선수의 에이전트 측이 2005 시즌 종료 후 부산, GS, 수원 등의 잇달은 제의에도 터무니 연봉만을 제시하며 강짜를 부리다가 결국 선수등록기한을 넘겨 박선수를 무적선수로 만드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낳고 말았다. 해외진출을 노리며 슬로바키아 리그 진출에 성공하나 싶었지만 막판에 계약이 틀어지면서 결국 박선수는 1년을 허송세월 보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맞이하였고,<ref>당시 FC GS의 2군에 참가하여 훈련을 소화하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 무적선수였다.</ref> 1년뒤인 2007년 수원에 입단하기는 하였으나 2005년의 폼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 2005년 [[부산 아이파크]]에서의 대활약을 발판으로 부활하는듯 했으나, 박선수의 에이전트 측이 2005 시즌 종료 후 부산, GS, 수원 등의 잇달은 제의에도 터무니 연봉만을 제시하며 강짜를 부리다가 결국 선수등록기한을 넘겨 박선수를 무적선수로 만드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낳고 말았다. 해외진출을 노리며 슬로바키아 리그 진출에 성공하나 싶었지만 막판에 계약이 틀어지면서 결국 박선수는 1년을 허송세월 보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맞이하였고,<ref>당시 FC GS의 2군에 참가하여 훈련을 소화하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 무적선수였다.</ref> 1년뒤인 2007년 수원에 입단하기는 하였으나 2005년의 폼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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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서는 박성배의 골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죠스바'를 관중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고.
  
 
== 경력 ==
 
== 경력 ==

2012년 4월 7일 (토) 20:21 판

박성배(1975년 11월 28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1998년부터 2007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공격수이다.



프로필

  • 이름 : 박성배 (Park Sung-Bae)
  • 등록명 : 박성배
  • 별명 : 흑상어
  • 국적 : 대한민국 대한민국
  • 출생일 : 1975년 11월 28일
  • 출생지 : 대한민국 충청북도
  • 신체 조건 : 181cm / 80kg
  • 주로 쓰는 발 : 오른발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유스클럽 : 숭실대학교 졸업
  • 현 소속팀 : 선수생활 은퇴
  • 국가대표 경력 : 1999년 ~ 2001년 국가대표 (A매치 8경기 출장)
  • 수상 경력 : 2001년 대한민국 FA컵 MVP 수상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전북 현대 다이노스 1998 32 6 12 3 5 1
전북 현대 다이노스 1999 30 10 11 1 2 0
전북 현대 모터스 2000 32 7 11 3 2 1
전북 현대 모터스 2001 23 11 3 4 1 0
전북 현대 모터스 2002 25 19 4 1 1 0
광주 상무 2003 26 19 2 1 2 0
광주 상무 2004 31 15 3 4 2 0
부산 아이파크 2005 25 19 7 2 2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7 19 18 2 1 6 0
용인시청 축구단 2010 17 14 3 0 2 0
용인시청 축구단 2011 0 - - - - -
통산 (K리그) - 234 124 55 20 23 2
통산 (내셔널리그) - 17 14 3 0 2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2년 3월 1일 기준.

유소년 생활

청주상고(현 청주 대성고)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 청소년 대표팀 경력을 가진 공격수로, 숭실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팀의 에이스로 뛰던 선수였다고 한다.


프로 생활

1998년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전북 현대 다이노스에 입단하였다. 입단하자마자 신인답지 않은 과감한 플레이로 호평을 받았으며 시즌초반부터 득점레이스가 가세하여 당시 이동국, 안정환과 신인왕 경쟁을 할 만큼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었다. 중앙과 측면 그리고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 등 공격진 어디에나 투입해도 어느정도 역할을 해주었던데다 공격진의 미르코최진철과도 어느정도 괜찮은 호흡을 보여주었다. 3시즌 연속 두 자릿수 골을 기록하며 승승장구 하던 박성배 선수는 2000년 FA컵에서도 MVP를 수상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하지만 2001년 시즌부터 시작된 팀의 부진과 함께 찾아온 계속되는 부상으로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었다. 결국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자 2003년 광주 상무에 입대를 결심하게 된다. 다행히도 상무에서 2년간 한껏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있었고, 상무 제대 직후 트레이드를 통해 FC GS로 이적하게 되었다.



하지만 2005년 GS에서는 히칼도-박주영 몰빵이 극에 달해있던 시점이었고, 박성배 선수는 교체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등 거의 2군 취급을 받게 되었다. 결국 단 3개월만에 임대이적 형식으로 부산 아이파크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부산의 이안 포터필드 감독은 루시아노와 함께 박성배 선수를 투톱으로 내세웠고, 박성배 선수는 전기리그 7골2도움의 맹활약을 펼쳐 우승을 차지했다.

플레이 스타일

저돌적인 돌파와 결정력이 돋보이는 선수였지만 몇번의 부상이후로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진 감이 있다.[1] 상무를 거친후 부산에서 부활하는 듯 했으나 이후 계약문제로 선수생활이 틀어져버린 비운의 선수.


에피소드

  • 2005년 부산 아이파크에서의 대활약을 발판으로 부활하는듯 했으나, 박선수의 에이전트 측이 2005 시즌 종료 후 부산, GS, 수원 등의 잇달은 제의에도 터무니 연봉만을 제시하며 강짜를 부리다가 결국 선수등록기한을 넘겨 박선수를 무적선수로 만드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낳고 말았다. 해외진출을 노리며 슬로바키아 리그 진출에 성공하나 싶었지만 막판에 계약이 틀어지면서 결국 박선수는 1년을 허송세월 보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맞이하였고,[2] 1년뒤인 2007년 수원에 입단하기는 하였으나 2005년의 폼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 부산에서는 박성배의 골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죠스바'를 관중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고.

경력

  • 2008.10 ~ 2009.? : YoungHeart Manawatu / 뉴질랜드 세미프로리그
  • 2009? : Eastern Suburbs AFC / 뉴질랜드 세미프로리그


같이 보기

외부링크

참고

  1. 국대병...;;
  2. 당시 FC GS의 2군에 참가하여 훈련을 소화하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 무적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