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호
조진호 (1973년 8월 2일 ~ 현재)는 대한민국의 미드필더 출신 감독이다.
선수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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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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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생활
유소년 생활
대륜고등학교 시절 뛰어난 유망주로 각광받은 선수이다. 고교 졸업 후에는 경희대학교에 진학하여 2학년까지 활동하였다.
프로 생활
K리그 드래프트 1994에서 포항제철 아톰스에 1순위 지명되어 프로 선수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데뷔 시즌부터 16경기에 출전하는 기회를 얻었고, 김호 감독의 부름을 받고 1994년 FIFA 미국 월드컵 본선 대표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프로에서 조 선수는 잦은 부상으로 슬럼프를 겪음과 동시에 작은 체구에 거친 K리그 무대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출전 경기 수를 더이상 늘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상무 축구단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군 전역 후인 1999년에는 자신감을 얻어 21경기에 출전하면서 프로 선수 데뷔 이래 가장 많은 경기를 출전하기도 했으나, 출전만 많았을 뿐 주전 전력들에게 밀리는 신세는 마찬가지라 시즌 종료와 함께 부천 SK로 유니폼을 갈아입게 되었다. 부천에서 조 선수는 주전 선수로 활동하면서 공격을 이끌었고, 2001년 화려한 스쿼드를 자랑하던 성남 일화 천마에 입단하게 되었으나, 성남에서 2년차를 맞이한 2002년에 무릎 부상으로 최종 은퇴를 선언하면서 선수 생활을 정리하였다.
국가대표 생활
어린 나이부터 두각을 나타냈기에 청소년 대표와 올림픽 대표팀을 두루 거치고 김호 감독의 황태자로 1994년 FIFA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과 본선 대표로 활동하였다.
플레이 스타일
빠른 스피드와 활동량, 그리고 공격 센스를 보여준 선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부상이 잦았고, 대표팀에서는 체격 조건이 불리한 조 선수를 적극적으로 기용하지 못한 감독들로 인해 크게 빛을 보지 못하였다.
지도자 생활
코치 생활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부천 SK에서 코치로 활동하였으며, 제주도로 연고 이전한 후에도 SK 유나이티드에 남아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9년 10월에는 선수단 장악에 실패하면서 불화설을 낳던 알툴 감독 사임 후 감독 대행으로 팀을 지휘하기도 하면서 와해된 SK의 조직력을 수습하며 감독으로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SK는 박경훈 감독을 선임하면서 정식 감독으로 취임하지는 못하였으며, 이후 2010년까지 코치로 활동하다가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전남 드래곤즈로 옮겨 코치로 활동하였다.
대전에서 감독으로 데뷔
2013년 대전 시티즌의 김인완 사단에 수석 코치로 합류하였다. 김 감독은 시즌 내내 대전의 부진을 이끄는 혹독한 감독 데뷔 시즌을 보내면서 압박감에 시달리며 결국 중도 사임하고 말았는데, 이후 두 번째로 대행직을 수락하며 대전을 이끌었다. 2013년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대전이 나락으로 빠진 상태라 강등을 바라만 봐야하는 입장이었는데, 2014년에는 선수단을 잘 이끌고 시즌 초반부터 연승 행진을 보이는 행보로 5월부터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이로써 두 번의 대행 끝에 정식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조진호 감독은 정식 감독으로 임명된 이후에도 아드리아노를 주포로 앞세우고 임대생 수비수인 안영규, 임창우 등의 선수들을 팀에 녹아들게 만들면서 대전을 승격으로 이끌면서 지도자로 역량을 과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K리그 클래식으로 진출한 2015년에는 아드리아노와 지지부진한 재계약 협상으로 동계 훈련부터 조직력을 올리지 못하고 삐걱대기 시작하고 임대 신분으로 맹활약한 선수들을 열악한 대전의 자금 사정으로 붙잡지 못하자 리그 개막 후 한동안 무승에 빠지고 말았다.[2] 이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상대로한 빅버드 원정 경기에서 2-1로 승리를 거두며 첫 승을 신고하기도 했으나, 그 경기를 끝으로 부진은 다시 이어지는 바람에 경질되어 대전을 떠나고 말았다. 이후에는 독일로 떠나 연수를 떠났다고 한다.
상주 상무 시절
독일에서 돌아온 조진호 감독은 박항서 감독의 후임을 찾던 상주 상무의 신임 사령탑이 되었다. 조 감독이 대전을 이끌던 2015년 전반기 동안 심각한 부진을 겪었기에 클래식 팀을 다시 지휘한다는 것에 부정적인 여론이 있었으나, 조 감독은 상주의 호화 선수진을 이끌며 상주의 돌풍을 이끌었다. 여기에 조 감독 특유의 선수 장점만 살리는 역할이 적중하면서 스트라이커로 정체성이 없는 플레이를 보여준 바 있는 박기동 선수의 부활을 이끌고,[3] 조직력을 최대로 끌어 올리면서 군 전역자들이 속출하는 가을부터 성적이 추락하던 상주를 이끌고 첫 상위 스플릿 진출이라는 업적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후 상위 스플릿 라운드에서는 상주가 이팀 저팀들에게 대량 실점을 하는 아쉬운 행보를 보이기도 했으나, 클래식 무대에서 실패했다는 꼬리표는 스스로 떼어내고 지도자로 가능성을 입증하였다.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2016년 11월, 최영준 감독 사임으로 공석이 된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지도자 스타일
전반적으로 자신의 전술에 선수를 맞추기보다 선수 장점을 극대화 시키는 지도자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에 아드리아노의 경우는 훌륭한 퍼스트 터치와 탄력을 이용하도록 역할을 단순화 시켜 시즌 27득점을 올리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만들어주기도 했다.[4]
에피소드
- 1987년 9월6일 포항제철 아톰즈와 럭키금성 황소의 경기에서 프라이드 승용차 경품 당첨자가 나오는데 그 경품의 당첨자가 바로 당시 17세의 고교 축구선수였던 조진호 선수, 경기시간을 잘못 알고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경품을 손에 넣었다고...당시 포항제철의 프런트는 이 선수가 7년뒤에 입단하게 될거라 생각이나 했을까...?[5]
경력
시즌 | 소속팀 | 리그 | 비고 |
---|---|---|---|
1994 ~ 1999 | 포항 스틸러스 | K리그 | |
→ 1997 ~ 1998 | 상무 축구단 | 실업 | 군복무 |
2000 | 부천 SK | K리그 | |
2001 ~ 2002 | 성남 일화 천마 | K리그 | |
선수 생활 은퇴 |
같이 보기
각주
- ↑ 선수 시절
- ↑ 여기에 중견 선수로 대전에서 안정감 있는 활약을 선보이던 윤원일 선수가 다시 부상으로 3경기 만에 시즌 아웃되어 버리는 악재까지 겹쳤다.
- ↑ 박 선수는 조진호 감독 지휘 아래 9득점 8도움이라는 좋은 경기력을 보인 바 있다. 문제는, 박 선수가 군 전역 후 원소속팀 전남 드래곤즈로 돌아간 뒤로 다시 경기력이 떨어지고 말았다.
- ↑ 불안정한 멘탈리티를 보여주는 아드리아노가 [FC GS]]로 이적한 이후에도 자신의 재능을 굳혀준 조진호 감독을 은사로 생각하며 2016년 상주 경기에서 득점 후에도 세레머니도 하지 않을 정도로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 ↑ 월간축구 1987년 10월호 4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