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여자축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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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한축구협회 로고

대한축구협회 여자축구단은 1985년 3월부터 1987년 2월까지 대한축구협회가 운영한 여자축구단이다. [1]

창단배경[편집]

국제축구연맹(FIFA)이 여자축구를 하는 나라가 증가하면서 여자 월드컵 축구대회를 계획하고 각 회원국에 참가를 적극 권장하면서 대한축구협회는 여자축구단을 창단하게 된다. [2]

창단과 해체[편집]

1985년 3월 면접과 실기시험을 통해 선발된 23인으로 구성됐다. 4월12일 대한축구협회 강단에서 공식적으로 창단식을 갖고, 4월14일 85 축구대제전 수퍼리그의 오픈경기로 인천전문대학 여자축구부와 경기를 가졌지만, 이후로도 공식경기의 상대팀은 인천전문대학 여자축구부였다. 그러다 1987년 2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여자축구붐이 일지않고 예산만 쓰인다는 이유로 해체한다.[3]


에피소드[편집]

  • 당시 여자축구팀의 감독은 축구원로 김화집씨.[4]
  •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여자축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자, 뒤늦게 대학 여자축구단 창단을 지원했고, 부랴부랴 대표팀을 급조했다. 아시안게임 여자대표팀 파견으로 논란이 많았고,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여자축구에 대한 지원이 흐지부지해지자 1987년 여자축구단 해체 사건이 언론에서 재조명 됐다.[5] [6]

같이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 월간축구 85년 4월호 52P

참고[편집]

  1. 지금의 국가대표 여자축구팀이 실업이나 대학을 비롯해 원래 소속팀에서 뛰다가 국제대회나 A매치를 앞두고 국가대표에 선발되는것과는 달리 이 팀의 선수들은 소속자체가 그냥 대한축구협회였다. 쉽게말해 오늘날의 전북현대가 현대자동차가 모체이듯이 당시 대한축구협회 여자축구단의 모체는 대한축구협회이다.
  2. 당시 대한축구협회가 여자축구의 활성화를 위해 직접 팀을 창단할게 아니라 고등학교,대학교팀의 창단을 적극지원하며 저변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는게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당시 워낙 여자축구에 대한 저변이 전무하다보니 직접 팀창단이라는 선택을 한것으로 보이지만 집을 지을때 지붕을 먼저 지은꼴이었다, 그나마 이왕 창단했으면 1991년 여자 월드컵까지 진득하게 기다려 보기라도 하던가...팀의 존재보다는 대한축구협회의 일관성없는 행정을 보여주는 흑역사라 할 수 있다.
  3. 여자축구단 해체..20여명 졸지에 實業 -1987년 2월 4일,동아일보-
  4. 김화집씨는 여자축구의 산파적 역활을 했던 분으로 중앙여자고등학교 교감이던 1949년(일부에서는 1947년이라는 자료도 있다) 여자축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중앙여고의 여자축구팀을 창설했고 연이어 서울여상,무학여고,명성여고,대구여고가 여자축구팀을 창설하면서 여자축구연맹을 조직하고 서울운동장에서 공개경기를 벌이며 활성화를 꽤 하고 있었으나 재정을 비롯한 여러사정으로 해체됐다.
  5. 여자축구팀 부활 오락가락 체육부 뒤늦게 창단 서둘러 -1990년 2월 16일,동아일보-
  6. 여자축구대표 1회용인가 즉흥창단후 슬그머니 해체 -1990년 11월 20일,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