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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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최성용.jpg
자스파 쿠사츠 시절 최성용 선수가 부인,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

최성용(1975년 12월 25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하였던 수비수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최성용
  • 출생일 : 1975년 12월 25일
  • 신체 : 173cm / 70kg
  • 국가대표 경력
1993년 U-20 청소년월드컵 대표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대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대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
2000년 AFC 아시안컵 대표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 대표
(통산 A매치 66경기 출장 1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2 11 2 0 0 1 0
2003 23 5 0 0 2 0
2004 35 6 1 4 3 0
2005 23 8 0 0 5 0
2006 12 10 0 1 0 0
울산 현대 호랑이 2007 9 8 0 0 0 0
통산 (K리그) - 113 39 1 5 11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0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팀 직책
2011.4 ~ 2012.6 강원 FC 2군 코치, 수비코치
2013.1 ~ 수원 삼성 블루윙즈 1군 코치

유소년 생활[편집]

경상남도 마산 출신으로 마산 합포초, 마산 중앙중, 마산공고를 거쳐 서울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마산공고 시절인 1992년부터 청소년대표에 뽑힐 정도로 탁월한 기량을 자랑했던 선수이다.


J리그와 유럽 진출[편집]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K리그 드래프트를 거부한채 상무에 입단하여 군문제를 해결하였다. 상무 시절에 1998년 FIFA 월드컵 본선 대표로 뽑힐 정도로 탁월한 기량을 자랑했던 최성용은 상무 제대 후, 곧바로 J리그 진출을 모색해 연봉 5천만엔에 J리그의 빗셀 고베에 입단하였다.[1] 일본에서 2년간 55경기 출장 6도움의 기록을 남기며 맹활약 끝에 2001년 1월, 강철 선수와 함께 오스트리아 프리미어리그LASK 린츠에 입단하여 활약하였다. 하지만 팀은 1999/2000시즌 오스트리아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당했고, 주전으로 활약하던 강철 선수와 최성용 선수는 나란히 국내복귀를 모색하게 된다.


K리그[편집]

오스트리아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최성용을 가장 적극적으로 영입하려한 팀은 수원 삼성이었다. 2001년 10월, 계약금 3억원과 연봉 1억원의 조건으로 입단에 합의한 최성용 선수는 2002년 K리그부터 수원 삼성에서 활약하여 2006년까지 활동하였다.


일본에서의 생활과 은퇴[편집]

울산 현대에서 K리그 생활 정리 후 지도자 권유를 뒤로 하고, J2리그더스파 쿠사츠로 이적해 3년을 더 현역 선수로 활약하였다. 이후 2010년 12월 4일, 공식적으로 은퇴 경기를 갖고 쿠사츠에서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듬해인 2011년 4월부터 강원 FC의 2군 코치로 부임하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시는듯. 2012시즌을 앞두고 수비코치로 보직을 변경하였다. 하지만 2012시즌 도중 강원의 김상호 감독이 경질됨에 따라 최성용 코치도 동반 사임하면서 강원에서의 생활은 마무리되고 말았고, 2013년 1월 신임 서정원 감독을 보좌하기 위하여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비코치로 수원 선수단에 전격 합류하였다.


국가대표 생활[편집]

1993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경기를 모두 소화하며 대표팀과 인연을 처음 맺은 최성용 선수는, 1995년부터 96년까지는 애틀란타 올림픽대표팀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양쪽에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후 1998년 FIFA 월드컵과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도 대표팀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1990년대 후반을 풍미하였던 선수이다. 특히 한일전 때마다 마에조노 등 일본의 플레이메이커들을 전담 마크하며 봉쇄해 호평을 들었던 선수이기도 하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강철과 더불어 오랜 시간 국가대표에서 측면 수비를 전담하였다. 좌 강철, 우 성용 콤비는 나란히 오스트리아에도 진출하여 화제가 되었는데, 오스트리아 시절 강철 선수가 사이드 풀백뿐만 아니라 플레이메이커까지 소화했던데 비해 최성용 선수는 측면 수비수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기술적인 수비와 커팅능력, 체력이 우수했던데 비해 신장과 스피드에서 약점을 보였다는 평가. 여담으로, 이같은 평가는 박진섭, 이영표 등 후대 국가대표급 사이드 풀백들도 많이 들었던 소리다.


에피소드[편집]

J리그 활약 당시 리포터와 선수 사이로 인연을 맺은, 일본 탤런트 겸 가수인 아베 미호코씨와 2003년 12월 결혼식을 올려 한일 스타부부가 탄생했다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최성용 선수의 말년 일본행도 부인의 영향이 컸었다는 전언. 아마 지도자 생활도 일본에서 시작하지 않으실까 생각했지만, 2011년 K리그의 강원 FC 2군 코치로 부임하면서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경력[편집]

  • 1997 - 1998 : 상무 / 실업
  • 2001 : LASK 린츠 / 오스트리아 프리미어리그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당시 빗셀 고베에는 하석주김도훈 선수가 활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