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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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영 (崔仁榮,1961년 09월 30일 ~ )은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83년부터 1997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하였던 전설적인 골키퍼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최인영
  • 출생일 : 1961년 9월 30일
  • 신체 : 181cm / 73kg
  • 국가대표 경력
1983년 ~ 1985년, 1990년 ~ 1994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1983년 제13회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대표
1984년 AFC 아시안컵 대표
1986년 FIFA 멕시코 월드컵 예선 대표
1990년 FIFA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대표
1990년 다이너스티컵 대표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대표
1992년 다이너스티컵 대표
1994년 FIFA 미국 월드컵 예.본선 대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통산 A매치 51경기 출전 39실점)
  • 현 소속팀 : 현역 생활 은퇴
  • 특기할 만 한 기록
K리그 사상 첫 퇴장 골키퍼(1984)
대한민국 월드컵 본선 사상 첫 골키퍼 무실점 (1994년 6월23일 볼리비아전)
K리그 총 176경기 출전 174 실점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실점 득점 경고 퇴장
1983 국민은행 축구단 국민은행 축구단 K리그 2 0 4 0 0 0
1984 현대 호랑이 현대 호랑이 22 0 26 0 0 1
1985 4 1 3 0 0 0
1986 17 0 14 0 1 0
1987 13 1 20 0 1 0
1988 4 0 7 0 0 0
1989 27 1 32 0 1 0
1990 10 0 11 0 1 0
1991 30 1 17 0 0 0
1992 28 2 26 0 3 0
1993 12 2 8 0 0 0
1994 40 0 34 0 0 0
1995 1 1 0 0 0 0
1996 울산 현대 호랑이 울산 현대 호랑이 0 0 0 0 0 0
1997 울산 현대 호랑이 울산 현대 호랑이 0 0 0 0 0 0
통산 K리그 176 9 174 0 7 1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7년 2월 1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팀 직책
1997 - 2003 울산 현대 호랑이 울산 현대 호랑이 코치
2006 - 2013 전북 현대 모터스 전북 현대 모터스 코치
2014 대한민국 고양 시민축구단 플레잉 코치


유소년 생활[편집]

원래 배구선수로 활동하던 최인영 선수는 파주 신산초등학교에서 4학년때부터 배구를 시작하였으나 초등학교 6학년때 축구로 전향하게 된다. 당시 축구부 주전 골키퍼가 부상을 당해 임시로 자리를 채웠으나 파주군에서 주최하는 초등학교 종합체육대회의 우승을 이끈다. 광탄중학교에서도 골키퍼 생활을 이어나갔으나 방과후 활동 수준정도였고 오히려 이덕에 재미있게 축구를 즐길수가 있었다고, 당시 최인영 선수는 몸이 약해서 훈련 도중에 코피를 쏟아서 부모님의 반대로 3~4개월동안 축구를 강제로 쉬게됐으나 다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서울체고에 진학하게 된다. 서울체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서울시청에 입단하게 되었고 당시 서울시청 선수들은 서울시립대 재학생의 자격이 주어져서 서울시립대의 선수로도 활약하게 된다.

K리그[편집]

국민은행 축구단 시절[편집]

1983년 시즌중에 국민은행 축구단에 임대되어 2경기를 소화했다.[1]

현대 호랑이 시절[편집]

1984년 현대에 입단하여 본격적인 프로생활을 시작한다. 1985년엔 햄스트링 부상으로 4경기에 그쳤지만 이후에 주전으로 자리잡아 현대의 주전으로 맹활약 했다. 1988년 오연교 선수가 입단하며 주전에서 밀렸으나 이후 다시 주전을 꿰찬다. 1993년부터 현대구단은 김병지로 세대교체를 준비하고 있었고 최선수가 국가대표에 차출되며 서서히 주전을 내주기 시작했고 1994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은퇴한다. 1995년 10월21일 울산에서 있던 대우 로얄즈전에 교체되어 마지막 경기를 무실점으로 장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고 은퇴하려 했으나 구단측에서는 은퇴를 좀 미뤄달라고 했었다고....

울산 현대 호랑이 시절[편집]

사실상의 플레잉코치로 1996년 명단에는 계속 있었지만 실제로 출전하지는 않았다. 1996년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은퇴했으나 1997년 서동명이 국가대표에 차출되면서 8월16일 전남전에 선수로 등록하였다. [2]

국가대표 생활[편집]

1983년 한일 정기전에 출전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루고 1985년엔 멕시코 월드컵 예선까지 참가하지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본선에는 출전하지 못했고[3] 국가대표 인연을 한동안 접게된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본선을 앞두고 김풍주 선수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프로리그에서 맹활약 하던 최인영 선수를 이회택 감독은 눈여겨 보고 전격 발탁하게 된다. 본선 1차전이었던 벨기에 전에서 갑자기 뛰어나와 실점을 하는 실수를 범했고, 2차전 스페인전은 미첼이라는 끝판왕에 3골을 내줬으나 3차전인 우루과이전은 한명[4]이 퇴장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선방을 펼쳐내며 맹활약 한다. 그러나 종료직점 헤딩실점[5]을 허용하며 아쉽게 대회를 3전전패로 마감한다. 이후로도 계속 국가대표 골문을 지키던 최인영 선수는 1994년 미국 월드컵 예선에서 맹활약하며 3회연속 본선진출을 이끌었고 본선에도 모두 출전했다. 하지만 마지막 독일과의 경기에서 3번째 실점이 매우 아쉬운 모습을 남겼고 이에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당시 실점 상활에 대해 최인영 선수는 막기 어려운 볼이었고 클린스만의 감각적으로 잘 찬 슛이었다고 해명한다.[6] 이후에 이운재와 교체됐고 최인영 선수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며 국가대표 무대를 내려오게 된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둔중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상당한 민첩성과 순발력, 판단력을 지녔으며 캐칭 능력 또한 우수했으며 여기에 안정감까지 지닌 골키퍼였다. 리더쉽 또한 상당히 뛰어나서 수비진을 지휘하는 능력도 좋았으며 롱스로인 능력 또한 높은 점수를 줄수있다.

에피소드[편집]

  • K리그 골키퍼 1호 퇴장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84년 7월1일 부산에서 있었던 대우 로얄즈 전에서 이천흥을 향해 발을 치켜들다 퇴장을 당하게 된다.
  • 1998년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이 선정한 20세기 아시아 역대 골키퍼 랭킹 3위를 기록한다. 오늘날 IFFHS의 자료와 단체자체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1990년대의 활약으로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순위이다.
  • 2014년 고양 시민축구단에 무급 플레잉코치로 재능기부에 나서게 된다. 당시 고양의 주전 골키퍼는 한명이었고 결국 시즌막판 리그경기에 출전하여 19년만에 현역으로 그라운드를 밟게 된다.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당시에 수퍼리그는 정관도 없었기 때문에 대학선수가 수퍼리그 구단에 입단해 경기를 뛰는게 가능했다.
  2.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1997년 11월15일 울산에서 열린 일본의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경기에서 서동명 선수가 고의 핸드링 반칙을 범해 퇴장당해서 필드 선수인 박정배 선수가 골문을 지켰으나 알까기 실점까지 당하며 1-5로 대패한다. 당시 김병지 선수는 월드컵 4회연속진출을 기념해 청와대에 축하연에 참석하느라 후보 골키퍼가 없었기 때문, 근데 울산구단은 최인영 코치를 후보명단에 올리지 않았다.
  3. 리그도 4경기에 그치게 된다.
  4. 윤덕여 선수로 대한민국 사상 첫 월드컵 본선 퇴장기록이다.
  5. 이는 오프사이드 였다.
  6. 외부링크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