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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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시절 최진철

최진철(1971년 3월 26일~)은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1996년부터 2007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수비수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최진철
  • 출생일 : 1971년 3월 26일
  • 신체 : 187cm / 77kg
  • 수상 경력
2002년, 2003년, 2006년 K리그 베스트 11 DF 부문 수상
2002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7년 K리그 대상 공로상 수상
  • 국가대표 경력
2002년 북중미 골드컵 대표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 대표
2004년 AFC 아시안컵 대표
2006년 FIFA 독일 월드컵 대표
(통산 A매치 65경기 출장 4골)
  • 현 소속팀 : 은퇴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1996 전북 다이노스 전북 다이노스 29 5 1 1 6 0
1997 전북 현대 다이노스 전북 현대 다이노스 21 1 2 0 6 0
1998 27 8 8 2 5 0
1999 35 16 9 6 3 0
2000 전북 현대 모터스 전북 현대 모터스 32 1 3 0 7 0
2001 25 5 0 0 6 0
2002 24 3 0 1 5 0
2003 33 2 1 1 7 0
2004 21 0 2 0 11 0
2005 30 2 1 0 9 0
2006 전북 현대 모터스 전북 현대 모터스 20 3 1 0 5 0
2007 15 2 0 0 5 1
통산 K리그 312 48 28 11 75 1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11월 7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 직책
2008 ~ 현재 최진철축구아카데미 총감독
2009 ~ 2011 강원 FC 수비 코치
2012 ~ 현재 대한축구협회 전임 유소년 지도자
2014.4 ~ 2015.11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5.12 ~ 2016.9 포항 스틸러스 포항 스틸러스 감독


유소년 생활[편집]

전남 진도군 출생으로, 제주중앙중과 오현고등학교를 거쳐 숭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공격수였으나, 숭실대에 입학하면서 감독의 제의를 받아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였다. 포지션을 변경한 후 골에 대한 부담감이 없는 안정적인(?) 포지션이라고 생각하여, 이게 내 자리였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숭실대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상무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하였는데, 상무 시절부터 뛰어난 활약을 보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A매치에 데뷔하지 못한 채 벤치를 지켰다.


프로 생활[편집]

1996년 군복무를 마치고 상무에서 전역할 예정인 시점부터 이미 스카우터들에게 차세대 대형 수비수 재목으로 관심을 나타내는 구단이 많았다. 그리하여 1996년 드래프트에서 전북 다이노스에 1순위로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당당한 체격의 수비수로 데뷔 시즌부터 거의 전 경기에 출장하며 이름을 알렸다. 프로 3년차였던 1998년 시즌초, 전북 현대 다이노스는 주 공격수인 김도훈이 J리그로 2년간 임대를 보내게 되었는데, 당시 전북 최만희 감독은 마침 187cm의 장신에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공격수로 뛴 경험이 있는 최진철을 주전 공격수로 낙점하여 김도훈의 빈자리를 메우고자 하였다. 이에 최선수는, 김도훈이 없는 두 시즌 동안 스트라이커로 활약하였다. 느린발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공중볼 제압 능력과 의외로 날카로운 슈팅 능력을 보여주었고 두 시즌간 17골 8도움을 기록하여 공격적인 재능을 보여주었다. 역시 되는 선수들은 뭘 시켜도 잘하는 듯 근데 문제는 최진철 선수가 공격으로 가면서 전북의 수비는 안드로메다로 (..)

2000년 김도훈이 전북으로 복귀한 이후에는 다시 수비수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호제리오 등과 발을 맞추며 전북의 취약점으로 지적받던 수비진을 조직적이고 끈끈한 수비진으로 재탄생시키기에 이른다. 2000시즌 전북은 창단 이후 최초로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는등 최진철의 활약을 앞세워 괄목상대할만한 성적을 거두었다. 같은해 겨울에는 FA컵에서 우승하며 팀의 최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1] 2006년 전북에서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MVP를 수상하였다. 팀의 역사와 함께 해왔던 그였기 때문에 우승의 의미가 남달랐다고 한다. 그리고 2007년 시즌 종료 후 선수 생활 은퇴를 결정하였다.


지도자 생활[편집]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위해 1년동안 지도자 연수를 받게 되었고, 동시에 2008년 전라북도 전주시에 최진철축구아카데미를 설립하였다. 2009년부터는 K리그 신생팀인 강원 FC의 수비 담당 코치를 맡았으며, 2011 시즌 종료 후 유상철 감독의 부탁으로 대전 시티즌 수비 코치로 자리를 옮기려했으나 무산된 뒤 2012년부터 대한축구협회에서 유소년 전임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이후 2014년 4월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취임하였으며, AFC U-16 챔피언십에서 한국 U-17 대표팀을 준우승으로 이끄는 지도력을 발휘하였던바 있다. 2015년 11월 말, 포항 스틸러스의 10대 감독으로 선임되었지만 2016년 9월 성적부진을 이유로 사퇴하였다.


국가대표 생활[편집]

상무 시절부터 뛰어난 활약을 보여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된이래 1995년부터 2006년까지 장장 12년간 국가대표 경력을 이어갔다. 다만 1995년 첫 차출때는 A매치에 데뷔하지 못한 채 벤치를 지켰다고.. 1997년부터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대표팀에 이름을 올려, 다시금 국가대표에 발탁되었다. A매치 데뷔경기도 치렀지만 결국 본선 최종 명단에서는 탈락하였다. 이후 2001년 무렵,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히딩크 감독은 유럽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는 힘과 체격을 가지고 있는 수비수들을 찾고 있었는데 여러 선수를 대표팀으로 불러들여 테스트 하던 중 다른 선수의 부상으로 합류한 최진철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결국 주전 수비수로 낙점 받게되어, 앞선 두 월드컵에서 예선에는 출장했으나 아쉽게도 본선에는 출전하지 못했던 서러움을 풀고, 2002년 월드컵에서 당당히 본선 엔트리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후 2002년 월드컵에서 홍명보, 김태영과 함께 역사에 남을 사상 최강의 수비진을 구성하며 당시 비에리, 클로제 등등의 세계적인 공격수들을 전담 마킹하며 월드컵 4강 진출의 숨은 공로자가 되었다.

이미 2004년 아시안 컵이 끝난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 예선을 치르던 중 답이 없던 수비진을 구원할 수비수가 필요함에 따라 최진철을 다시금 국가대표팀 주전 수비수로 기용하게 되었는데 당시 한국축구의 대세가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넘어감에 따라 최진철도 포백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는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바로 다음 경기부터 적응. (역시 되는 선수들은 뭘 시켜도 잘하는 듯) 월드컵대표팀의 맏형으로서 다시금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국가대표를 은퇴했다가 몇년만에 돌아와서 바로 팀내 중심을 잡는다는게 쉬운일은 아닌데. 최진철 선수는 그걸 해냈다 ㄷㄷ..


플레이 스타일[편집]

포백에서는 센터백, 스리백에서는 왼쪽 스토퍼가 주 포지션이었다. 187cm의 당당한 체격으로 강력한 제공권 제압 능력을 지닌데다, 수비 위치선정 까지 좋아 1:1 마킹에서는 당할 선수가 없을 정도였다. 발이 느린편임에도 불구하고 노련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는데, 국가대표팀으로 활동하며 괴물같은 공격수들을 상대했으니 노련미에서는 당해낼 자가 없었을 정도. 특히 최진철 - 홍명보 - 김태영 3백라인은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라인이라 평가받고있다. 참고로 수비수로 뛰던 시절에도 간간이 스트라이커 포지션으로 올라와 공격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에피소드[편집]


경력[편집]

  • 1994 ~ 1995 : 상무 / 실업축구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이후 인터뷰에서 평생 기억에 남을 경기가 2000년 FA컵 결승과 2006년 ACL 결승이었다고 할 정도로 첫 우승의 의미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