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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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합판 CI. 축구단 유니폼에도 기안되었었다.

한국합판(韓國合板)은 전북 군산소재의 목재회사로 1970년부터 1972년 3월까지 축구단을 운영하였다. 한국합판은 후에 세풍그룹으로 성장하여 전북지역의 유력한 대기업이 되었으나 1998년 부도처리 되었다.


한국합판 (세풍)[편집]

1953년 창업주 고판남의 성냥제조업으로 출발하였으며 1960년대 가발과 함께 한국의 주력 수출품이던 합판을 수출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1] 합판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1973년 고려제지(세대제지)를 인수, 합판사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제지사업으로 전환에 성공하며 한때 신문용지사업에서 2위를 기록하는 등 사세를 확장시켜 세풍그룹으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허나 전북지역 민방인 전주방송을 인수한데 이어 무리한 F1 그랑프리 대회 유치를 진행하다 IMF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1998년 부도처리 되었다. 전주방송 등 은 계열분리되고 나머지 회사들은 모두 파산 및 워크아웃상태가 되며 그룹은 공중 분해되었다. 후에 F1 자동차 경기대회(고대원) 및 전주방송(고대용) 인수 과정에서의 뇌물 비리가 밝혀져서 사주형제(고판남의 손자들)가 구속되었다.


한국합판 축구단[편집]

1969년 8월 창단하여[2] 꾸준히 실업축구연맹 주관 대회에 참여했다. 창단 계기가 독특한데, 1968년 군산 시내에서 직장인 축구대회가 열렸던걸 한국합판 팀이 우승을 거두자 내친김에 실업팀까지 창단하게 된 케이스라고 한다. 선수들은 8시부터 근무하여 12시에 업무를 마치고 2시부터 5시까지 연습을 하는게 일과였으며, 축구팀에 별도로 지원되는 예산이 없어서 사내매점 이익금으로 축구단 운영비를 충당하는등 열악한 형편에도 불구, 축구팀 존속을 이어갔다. 하지만 1972년 초 유이한 지방팀인 제일모직 축구단이 해체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그해 3월 30일 해체되었다. 국가대표를 지낸 유명한 축구선수도 없었지만, 팀이 구성된 계기가 나름대로 순박했고 호남 지역 최초의 실업축구팀이라는 의미가 있는 팀이라 할만할듯.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당시 한국은 세계 제1의 합판 수출국으로 한 때 전세계 합판시장의 83%를 장악하기도 하였다.
  2. 1970년 3월에 창단해 해체했다는 언론 기사가 있지만, 월간축구 1970년 7월호에 1969년 8월 창단으로 나와있다 1970년 6월에 열린 18회 대통령배 쟁탈 전국축구대회에서 한국합판을 창단 10개월 밖에 안된 팀이라고 소개된만큼 이 쪽이 더 신빙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