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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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준호.jpg
대구 코치 시절 조준호

조준호(1973년 4월 28일~)는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 선수로 1999년부터 2010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골키퍼이다.

2010년부로 대구 FC 플레잉 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2016년 현재 FC GS U-15팀 골키퍼 코치를 맡고 있다.


프로필[편집]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조준호
  • 출생일 : 1973년 4월 28일
  • 신체 : 185cm / 78kg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실점 도움 경고 퇴장
포항 스틸러스 포항 스틸러스 1999 20 1 30 0 1 0
2000 30 0 38 0 1 1
2001 11 1 13 0 0 0
포항 스틸러스 포항 스틸러스 2002 6 0 7 0 0 0
2003 2 1 3 0 0 0
부천 SK 부천 SK 2004 36 0 36 0 0 0
2005 36 0 31 0 0 0
SK 유나이티드 SK 유나이티드 2006 33 2 33 0 0 0
2007 15 1 17 0 0 0
2008 27 3 29 0 0 0
대구 FC 대구 FC 2009 14 1 29 0 2 0
2010 0 - - - - -
통산 (K리그) - 230 9 266 0 4 1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2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경력
2010 대구 FC 대구 FC 플레잉 코치
2011 ~ 2012 골키퍼 코치
2013 대구 FC 대구 FC 플레잉 코치
2014 골키퍼 코치
2015 Teamlogo gs.png FC GS U-15 골키퍼 코치


K리그 입단 이전[편집]

유소년 생활[편집]

서울시 대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 입학해 활약을 펼쳤다. 특히 1995년 전국대학축구선수권대회에서 홍익대를 창단 첫우승을 거머쥐었는데, 이 대회 결승전에서 홍익대는 연세대학교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이 펼쳐진바 있다. 이때 조준호 선수는 연세대 키커 3명의 슛을 모두 막아내며 홍익대의 우승을 결정지었고, 이같은 활약 덕분에 조준호 선수는 동대회 MVP를 수상하였다.


실업 리그 활동[편집]

1990년대 실업 축구계의 강호였던 주택은행 축구단에 입단하여 3년 동안 활약하며, 실업연맹전 우수 GK상 수상등 실업군 최고의 활약도를 보였다. 그러나 1998년 가을, 주택은행 축구단이 IMF 여파로 해체됨에 따라 99년 주택은행에 입단 예정이었던 선수들과 기존 주택은행 선수들 중 일부가 1999년 드래프트를 신청하여 K리그에 입성하였다. 그중 한명이 조준호 선수였으며 조준호 선수는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였다.


K리그[편집]

포항ㆍ부천 시절[편집]

1999년 포항 입단 후, 한동안은 후보 골리 신세였다. 하지만 기존 포항의 1선발 골리였던 김이섭 선수가 99시즌 들어서면서 부진에 빠진데 이어, 99년 8월 아디다스 컵대회 8강전 對 울산 현대 호랑이 전에 출전한 조준호 선수가 승부차기에서 울산의 정정수, 김기남의 킥을 잇달아 막아내어 팀을 4강으로 인도하는 파란을 일으켜 이후 1선발 지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김이섭 선수는 조준호에게 밀린 후 2001년 김병지 선수까지 포항에 입단하자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했고, 조준호 선수는 2003년까지 포항에서 김병지를 잇는 2선발 골리로 활동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2004년 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은 조준호 선수에게 인천 유나이티드가 적극적인 영입의사를 내비쳤지만, 결국 최종 목적지는 부천 SK였다. 정해성 당시 부천 감독이 조준호 선수의 영입에 특히 공을 들였다고. 조준호 선수는 부천 입단 후, 대활약하며 2005년 이전까지 최하위를 맴돌던 부천의 실점율을 1점대 초반으로 틀어막는데 성공했고 이를 계기로 2006년 1월, 국가대표에까지 뽑히는 영예를 누리며 리그내 수준급 골리로 입지를 다졌다.


대구 이적 이후[편집]

백민철만 믿고가던 대구 FC에 2009년 초 입단하였다. SK 측이 지도자 연수를 제의했으나 조준호 선수는 좀 더 선수생활을 하길 원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백민철 선수에 대한 팬들의 신뢰가 워낙 두터웠고, 백선수의 기량도 건재한 상황에서 조준호 선수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1] 결국 2009시즌 14경기 29실점이란 성적표를 받아든 조선수는 2010년부터 플레잉코치의 길을 걸으며 선수생활의 황혼기를 맞이했고 2011년 골키퍼 코치로 부임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하였다.

...하지만 2013년 혹시나 있을지 모를 골키퍼 공백을 최소화 하기위해 대구 FC는 조준호 코치를 다시 플레잉 코치로 등록하였다. 2013시즌 현재 대구는 이양종, 조현우, 배인영 이렇게 3명의 골키퍼가 있는데 3명 다 나이가 어린 편이라 중심을 잡아줄 조준호 씨의 선수 복귀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지도자 생활[편집]

대구 FC 골키퍼 코치로 오랜 시간 활동하며, 여러 선수들을 지도하였다. 특히 이양종조현우 등 대학 무대에서 잠재력을 인정받기는 하였으나, 프로 무대 적응에는 물음표가 달려있었던 젊은 선수들에게 적극적인 기회를 부여하고 성장을 이끌어낸데에는 조준호 코치의 공이 컸다는 평. 이후 2016년 FC GS U-15 유스팀인 오산중학교 축구부 골키퍼 코치로 부임하며 대구와의 인연을 정리하였다.


그 외[편집]

플레이 스타일[편집]

에피소드[편집]

  • 주택은행 시절, 3년간 주택은행 골키퍼로 활약하며 팀의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3년 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98년 대회 결승전에서는 한일생명 축구단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끝에 우승을 거머쥐었는데, 이때 조준호 선수가 한일생명의 8번째 키커의 PK를 걷어내고 자신이 주택은행의 8번째 키커로 나서 PK를 성공시키는 원맨쇼를 펼치며 주택은행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근데 3개월 뒤 팀이 해체 ...;
  • 부천 SK 시절, 발군의 선방 능력을 보였으나, 가끔씩 (1년에 1~2번?) 어처구니없는 실점을 저질러 황당한 골의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일례로 2005년 부산 아이파크도화성에게 한때 K리그 역대 최장거리골이기도 했던 65M 골을 헌납한 주인공도 조준호 선수이다.
  • 2012년 드래프트에서 1순위, 3순위, 4순위, 5순위 팀 1번째 지명권을 모두 조준호 코치가 뽑아 화제가 되었다. 대구팬들은 얼른 로또를 사시라고 조언(?)했을정도.


선수 경력[편집]

  • 2013 : 대구 FC / K리그 (플레잉 코치 등록)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특히나 대구의 전술 성향상 골키퍼의 실점율이 엄청 높을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