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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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 국가대표팀이란 1972년 뮌헨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한 장기적인 시야에서 대한축구협회가 구성하였던 국가대표팀이다.
1970년 2월 13일부터 1971년 12월 1일까지 존재하였다.
청룡 대표팀의 활동 내역[편집]
1970년 대한축구협회는 70년 메르데카컵ㆍ킹스컵의 우승 및 아시안게임 우승을 1차 목표로, 이어 1971년 박대통령컵쟁탈 국제축구대회 우승 및 1972년 뮌헨 올림픽 본선 진출을 2차 목표로 선정하고 청룡과 백호 상비군을 조직하였다. 이후 동년 2월 25일부터 태릉 선수촌에서 합숙에 들어갔던 청룡팀은 1970년 메르데카컵 단독 우승[1] 킹스컵 우승, 아시안게임 공동 우승을 일구어내며 1차 목표를 달성하는데 성공하였고, 1971년에도 박스컵 공동 우승을 달성하였으나 마지막 목표였던 뮌헨 올림픽 본선 진출 달성에는 실패해 1971년 11월 킹스컵 일정을 끝냄과 동시에 해체를 발표하고, 12월 1일 해단하였다.
청룡 국가대표팀의 구성[편집]
1970년 메르데카컵 대표 출전 명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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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아시안게임 출전 명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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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뮌헨 올림픽 아시아예선 참가 명단[편집]
포지션 | 이름 | 당시 소속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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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탭진 | |||
감독 | 한홍기 | KFA | |
트레이너 | 우상권 | 한양공고 코치 | |
강준영 | 한일은행 축구단 코치 | ||
선수단 | |||
GK | 이세연 | 신탁은행 축구단 | |
변호영 | 서울은행 축구단 | ||
필드 플레이어 |
김정남 | 외환은행 축구단 | |
김호 | 상업은행 축구단 | ||
서성오 | 제일모직 축구단 | ||
이차만 | 고려대학교 | ||
김호곤 | 연세대학교 | ||
김기효 | 해병대 | ||
최재모 | 육군 | ||
정규풍 | 육군 | ||
최길수 | 기업은행 축구단 | ||
박병주 | 서울은행 축구단 | ||
허윤정 | 서울은행 축구단 | ||
이회택 | 한양대학교 | ||
박이천 | 중앙대학교 | ||
박수일 | 외환은행 축구단 | ||
박수덕 | 기업은행 축구단 | ||
김창일 | 대한중석 | ||
정강지 | 신탁은행 축구단 |
해체[편집]
이처럼 청룡 국가대표팀은 대한축구협회의 지원 속에 성장하였으나 1972년 뮌헨 올림픽 아시아예선에서 말레이시아에게 덜미를 잡히며 아시아예선에서 탈락, 마지막 숙원이었던 뮌헨 올림픽 참가가 무산된 뒤 1971년 12월 1일 해산하고 말았다. 이후 청룡의 후신으로 23세 전후의 어린 선수들을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하여 1971년 12월 15일부터 육성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국가대표 상비군의 출범은 이후 1976년 화랑 국가대표팀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의의[편집]
같이 보기[편집]